삼척에서 죽서루와 중앙시장과 해수욕장을 구경하다
울진을 떠나서 동해시의 묵호항을 가는 도중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7번 국도를 달리는 중에 각 지자체는 방문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삼척이라는 곳은 그냥 지나쳐야 할지? 아니면 오전에라도 들러야 할지 긴 여행의 선택 순간이 왔다. 내 목적지는 일단 고성이다. 굵직한 방문지를 두고 삼척이라는 곳에 무엇이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스마트폰을 검색했다.
삼척 죽서루(竹西樓) 관동팔경 중의 하나가 있었다. 그래서 시간제한을 두고는 삼척 시내로 들어섰다. 다행인 것은 다른 관동팔경의 느낌과는 다르게 장소가 강을 끼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광한루보다는 작은 곳이지만,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로 최대한 자연 배경으로 만들어진 모습에서 좋은 점수는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내륙에 사는 내가 보기에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 풍경은 감흥이 좀 덜했다. 오히려 진주성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순간 떠올랐다. 그냥 청소 중인 직원분과 관리 공무원은 어떻게 운영을 할지? 직업 정신으로 각종 시설물만 견학하고 나왔다.
뭐 볼 거 없을까?
다시 검색해보니 시장이 있었다. 그래도 먼 곳에 있는 전통시장은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한 마음에 걸어서 찾아갔다. 역시 입구부터 도넛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시골이기에 가능한 낡은 건물과 새로운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신식 건물이 함께 공존하는 여느 소도시의 시장이었다. 그래도 생동감 넘치는 모습에서 식욕과 여흥이 되살아났다.
여행을 가면 유명한 관광지와 더불어서 맛집과 전통시장을 가보기를 추천한다.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모를까. 내 주변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찾고 싶다면, 역시 사람이 있는 곳을 일부러 찾는 게 여행이다.
뚠뚠이답게 먹을 것을 탐하려는 나는, 입구에서 청년지원 몰이라는 공간을 보고, 잠시 식욕을 멈췄다. 몇 년 전부터 ‘청년몰’이라는 그것이 유행하긴 했지만, 지역명도 잘 모르는 전통시장에서 청년지원 몰을 보고는 핸드폰 사진을 찍어 보았다.
아마도 노인만 있을 소도시일 것이다. 젊은이는 거의 빠져나간 이 도시에 청년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점은 개인적인 호기심을 떠나서 공무원으로 보기에도 대단한 도전이 아녔나 생각해봤다.
성공과 실패는 솔직히 모른다. 어쩜 인기를 위한 부단한 홍보 수단일지는 모르지만, 청년과 도전은 너무나 어울린다. 그리고 그것에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은 흔히 말하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의무기도 하다. 그렇게 보니 회색빛으로 보이던 도시의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이참에 좀 걷는다는 마음으로 시내 중앙을 가로질러서 들어보니,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이었다. 나이 드신 어르신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 도시를 위해 일하고, 활동 중이었다.
기회와 도전이라는 것이 공무원 합격이라는 것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정도 이뤘다고 싶었지만, 막연하게 흐트러진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불만은 어찌나 많았던지. 술안주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다시금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한 주마다 기다리는 로또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우리 청춘에게 ‘청년몰’은 어떤 장소일까?
물론 생각을 해봐도 결국은 지나는 길에 로또를 샀다. 그래도 의무적으로 사 오던 것과 다르게 좀 기운차게 사봤다. 삼척에서 느낀 묘한 감정이 힘이 나서인지 지갑을 여는 손이 힘이 들어갔다. 사실 아마 꽝이 되겠지만, 이번 주는 그래도 별로 마음에 상처는 안 받을 것 같았다. 아직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로또를 사고 싶어 졌지만, 그 순간은 마음이 가벼웠다.
삼척을 떠나기 전에 해수욕장을 들렀다. 동해의 여느 해수욕장과 다름이 없지만,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주변에 건물 지붕마저 푸른 그것이 도전하기 딱 좋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 좋게 다음 여행지로 떠났던 것 같다. 잠시 삼척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무엇이든 의미 없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람도 장소도 하물며 해변에 모래알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려 했던 속 좁은 여행객은 미안해서라도 삼척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