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고래불 해수욕장과 후포항을 가봤다
태어나서 실제로 고래를 본 적이 있던가?
난 없다. 설령 바닷가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실제로 고래를 본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난 지리산이라는 내륙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동물원도 못 가봤지만, 가장 큰 동물을 본 기억은 곰뿐이다.
그런데 영덕 고래불 해수욕장을 도착하니, 고래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입구부터 화려하다. 확실히 거대한 영덕 대게의 조형물보다는 어울릴만한 크기이고, 거대함도 아름답다. 하지만 실체를 보지 않았기에 무척 형상이 없는 감각으로 접근해야 했다. 과거에 있었다는 유래로 난 지명의 흔적을 잠시 감상만 하는 것뿐이니까.
떠올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위로 잘라서 복사를 한다. 이제 영상으로 접했던 모습을 상상하며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저 망망대해에 커다란 물줄기를 고래를 넣어봤다. 물론 바다는 평온하고, 푸르기만 했다. 머릿속에서만 사는 고래 한 마리가 다니는 것 빼고는 말이다.
돌아와서 여행을 생각해보니, 요즘 방영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떠올랐다. 드라마에서 깜짝 등장하는 고래는 실제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이상적인 동물이라는 점에서 주인공과 줄거리가 닮았다. 누구나 상상하지만, 또 그러길 바라지만, 못 보고 죽을 확률이 너무나 높은 꿈. 마치 고래는 허망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허구 같은 진짜다.
바다는 멀다. 동해는 서해와 남해와 다르게 섬도 거의 없다. 저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처럼 불안하고 뭔가 아쉽다. 그렇기에 그냥 지나쳐버린다. 아름답다고 말은 해도, 막연하게 불안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면 피하는 우리처럼.
나의 여행은 흘러가는 물 같았다. 마치 목적이 있는 것처럼 점을 찍듯이 움직이지만, 지나치듯 훅 지나고 잊는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는 또 잊고 다시금 그곳을 찾아간다. 아마도 그래서 편집적인 기억의 보관을 위해서 그토록 사진을 남기는 것 아닐지. 다행히 나는 사진도 찍고, 메모도 충실히 해서 그 당시의 감정을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고래불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차로 달려가는 중에도 말이다. 오히려 울진군에 후포항에서 사람들의 생기를 느끼고, 스카이워크에서 점점 바다로 다가가서 먼 경치를 구경했던 설렘을 사진으로 남겼던 때를 기억했다.
그러다 다시금 사진을 보니, 아무리 가까이 간다고 해도 바다는 그냥 멀었다. 오히려 멀리 떨어져 나온 상태로 뒤를 돌아보니, 마을의 경치가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꿈을 찾아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내가 있던 곳이 가까우면서도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은 왜 몰랐을까.
어차피 돌아가야 할 곳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그리고 육지로 가면서 하늘에서 지상으로 다시금 내려가 보니, 아름다운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마실 나온 강아지도 그것을 아는지. 몸을 뒹굴면서 애교를 부리는데, 나는 왜 몰랐던가.
옛날에는 그곳에서 고래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이상과 현실이 어느 정도 경계선에 맞닿았을 수 있던 때도 있었겠지. 하지만 아마도 난 죽을 때까지 고래를 볼 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또 내 꿈은 허망한 상상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곳을 부정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7번 국도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도록 이렇게 글로 남기고, 마음에 새기고, 보여주므로 지키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일어나서 글을 쓰기 전, 머릿속에 동해의 푸름을 밑바탕으로 고래 한 마리를 넣었다. 아니다. 한 마리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아기 고래도 넣었더니 더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