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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바다를 바라보며 날 추억할까?

영덕 해맞이 공원에서 추모의 흔적을 보았다

by 이춘노

내비게이션을 바꿔야 했다. 가끔 나를 높은 경사에 급커브길을 자연스럽게 안내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나는 단순하게 바다가 보이는 길을 쭉 달려가려는 것뿐인데, 알리는 곳이 험하다. 그냥 영덕대게로를 따라가는 길은 나와 차를 오르락내리락 춤추게 했다.


동해안은 일출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온다. 아마 서울에서는 강릉이나 속초로 가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그렇지만 나 같은 전라도 사람에게는 그나마 고속도로가 연결된 포항이나 영덕까지는 1박 2일로 다녀가기 좋은 일종의 마지노선 같은 지역이다. 아마도 단순히 동해를 보기 위해서라면 딱 영덕에서 멈춰야 했다. 가족이 있다면 포항에서 과메기를 먹고, 영덕에서 대게를 먹으면 딱 좋은 코스다. 하지만 나에게는 함께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기왕 온 길을 끝까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출발에서 느낀 들뜬 기분과 다르게 멈춰 선 곳에서 나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 ‘영덕 해맞이 공원’에 잠시 멈췄다. 보통 공원이라고 하면, 넓은 주차장과 탁 트인 평지와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지만, 여긴 그냥 소나무 가득한 돌산에 의자가 있는 게 전부였다. ‘해맞이’하기에 좋은 위치인 것은 경치로 짐작했지만, 마치 먼 길을 가다가 언덕을 넘기 위한 쉼터 같은 공원이었다.


소나무 길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그 사이에 철쭉이 피어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바다의 짠 내와 달콤한 꽃향기가 하나가 되면 무슨 느낌일까 싶었는데, 마치 고소한 횟감을 곱게 씹는 느낌이었다. 바다에서 느끼는 시원함과 꽃밭에서 느끼는 달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매력 같았다.

휴게소에서 쉬듯이 운전하면서 절여 오는 오른 다리를 조심스럽게 풀어가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래도 뻐근한 팔다리를 쉬게 하려고, 바다가 더 가까운 그늘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올라앉아서 아래를 보니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딱 보아도 누군가를 추모하며 놓인 꽃이다. 상대가 꽃을 들 수 있게 정갈하게 놓인 꽃다발을 보고서 다시 바다를 보았다. 아마도 누군가 이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것을 상상했다. 말라버린 꽃처럼 슬픔은 당시보다 줄었을지 모르지만, 잊지 않고 이곳을 찾아주는 살아있는 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그리움. 아니면 즐거운 추억.


사실 무덤은 죽은 자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죽은 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만든 인연의 끈 같은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떠나보낸 적은 없다. 다만 직업적으로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본의 아닌 상주의 역할을 서류상 처리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가족들이 유골도 찾아가지 않아서 무연고 유골함이 봉안당에 덩그러니 안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가끔 나는 나의 죽음을 상상했다. 친한 친구와 술 마시면서 혹은 일기장에도 써둔 말이지만 그냥 화장하고, 바다나 산에 뿌려지면 좋겠다.

그런데 이 꽃다발을 보고 있으니, 기왕이면 동해에 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이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미련이고 추억이라면, 이 좋은 경치를 함께 보여주는 게 그나마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선물이 되지 않을지. 명당 일지는 몰라도 깊은 산속에 무덤을 쓰는 그것보다는 일 년에 한 번 혹은 인생 살다가 가끔은 좋은 경치 구경하면서 다녀갈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추모하며, 꽃길을 따라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는 꽃보다 조용히 시들어서 잠든 꽃이 더 짙은 향기를 내는 것 같아 가는 동안은 쓸쓸한 내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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