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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은 리메이크곡처럼 스며든다

남원 금생춘에서 해장하다

by 이춘노

‘속 쓰리다. 아~ 짬뽕 국물 댕기네.’


간만의 술이었다. 혼자 마시는 술만 조금 하던 중에 사람을 만나서 소주병 장벽을 세운 것도 오랜만이다. 테이블에 늘어선 술병을 생각하면 아침이 괴로울 만했다. 그러니 점심은 무조건 해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떠올린 건 짬뽕이다.


어느 지역이나 짜장면이나 짬뽕으로 건물 올린 맛집들이 있다. 내가 먹는 이곳도 작은 도심도 아닌 시골에서 시작해서 도심까지 확장한 짬뽕 맛집이다. 밀려드는 사람들로 평소에는 먹지 못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있어서 과감하게 짬뽕 곱빼기를 주문했다. 면을 후후 불어가면서 가볍게 면치기를 하고, 옷에 묻은 짬뽕 국물을 대충 티슈로 닦고서 국물을 떠먹는다. 오징어와 조갯살은 건빵 별사탕처럼 심심해질 식감 중간에 껴 넣어서 합을 맞췄다. 역시 짬뽕은 속풀이에 진리다.


속풀이에 이유가 된 술자리를 생각해보니, 웃음이 났다. 2018년 여름 산내면 깊은 지리산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 그 둘의 승진을 축하는 의미로 모인 자리였다. 주민들 사이에 지리산 곰돌이 삼 형제라고 불리던 막내 곰과 내 옆자리 짝꿍은 바쁜 와중에 나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기꺼이 내주었다.

동그란 실내포차 철제 테이블에 셋이 모였다. 가운데 숯불이 들어오고, 일단 소갈비 2인분을 막내 곰이 정성껏 굽기 시작했다. 내가 어미 새라고 부르는 귀여운 막내는 이미 나보다 직급이 높아지는 베테랑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연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면서도 장인 정신으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다.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고기 굽는 솜씨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여전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당시 내 짝꿍은 사회복지 1년 선배이다. 한참 누나이고, 흔히 말하는 센 언니였다. 소문과 성격만 그랬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사람. 어쩌면 안 어울리는 그 세 명의 조합은 종종 이렇게 나를 끼워서 술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과거의 인연으로 함께한 사람들은 역시나 과거에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비만 왔다 하면 폭우가 쏟아지는 지리산에서는 여름철은 항상 비상이었다. 특히나 주말에 다가오는 태풍은 애초에 개인 일정을 잡을 수도 없었다. 떨어진 낙석이나 침수된 도로에 무작정 들어가서 해결을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행사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단풍제라는 축제를 하기 위해서 산골 마을 정상에서 막내 곰과 나는 형제 아르바이트냐고 오해를 받으면서 참여도 했었다.

그러한 추억에 소주병을 김치냉장고에서 하나씩 꺼내고, 얼어버린 소주에서 샤베트처럼 술이 나오는 장면에 또 한 잔 마시더니 술병이 쌓였다. 그리고 나의 복귀를 조심스럽게 응원해줬다. 사실은 두 사람의 승진 축하보다는 나를 위한 자리기도 했다.


짬뽕을 먹다 보니 국물을 너무 먹었다. 에어컨 앞자리 테이블에서 먹고 있음에도 땀이 났다. 속도 어느 정도 풀리고, 휴지를 뽑아 이마와 입을 닦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좋은 말만 듣고
예쁜 것만 보며
벅찰 만큼 사랑받길


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귀엽게 내일은 이곳에 휴가임을 표시하면서 식당의 즐거운 기대를 손님에게도 공유했다. 마음 같아서는 펜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싶었지만 꾹 참고 문을 나섰다.

배부르게 짬뽕을 다 먹고 돌아가는 길에 음악을 듣기 위해서 리메이크곡을 찾다가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이라는 음악을 들었다. 사실 나는 샵이 부른 노래의 세대지만, 청하와 콜드가 부른 버전을 듣고 걸었다. 그리고 어제 나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좋은 말만 들었고, 예쁜 음식만 보았고, 벅찰 만큼 사랑을 받았음을 떠올렸다. 아무리 짬뽕이 오래된 음식이라도 잊히지 않는 것처럼 나의 고마운 인연도 리메이크곡처럼 새롭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버전의 만남을 또한 기대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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