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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쌀이 들어온다

사회복지직이 생각하는 이웃 돕기란

by 이춘노

사무실에 전화가 왔다.


“000 양곡 업체입니다. 익명의 기부자께서 면에 쌀을 기부하시겠다는데, 배송을 언제 하면 좋을까요?”

정말 훅 들어온 기부에 반가운 것도 잠시.


“혹시 몇 킬로, 아니 몇 포인가요?”

“20kg이고, 100포입니다.”


잠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이웃돕기 담당자에게 얼굴로 무언의 날짜를 묻고는 '화요일'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연초에 이름 모를 누군가의 기부를 받게 되었다.


가끔 뉴스나 지방 신문에 사진을 찍으면서 기부된 품목에 쌀을 쌓아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았을 것이다. 보통 들어오는 기부가 10kg 50포 정도이다. 시청에서도 100포는 꽤 많은 수량에 속하는데, 인구가 작은 면에 2,000kg이라면은 꽤 많은 양이다. 아마도 내 돈이 아니고, 내가 먹을 것이 아니니까. 무심하게 지나쳤을 것 같지만, 한국인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이 2021년 기준으로 57kg이다. 그리고 1포에 50,000원으로 잡아도 그 환가액은 5,000,000원이다. 어느 고수익의 직장인 한 달 월급을 턱 하니 이름도 없이 내놓은 것이다. 듣자 하니 우리 면에만 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10곳이라고만 생각해도 액수는 다시 10배가 된다.

나는 몇 년 전에 시청에서 이웃 돕기 담당자로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움직이면서 사랑의 열매를 뿌리고 다녔던 사회복지직의 영업사원으로 뛰었다. 흔하게 하는 사회복지직에 대한 오해가 있다. 단순하게 나랏돈을 받아서 나눠주기만 하는데, 뭐가 그리 힘들다고 하느냐는 핀잔이다.

하지만 우리도 연말이나 연초 혹은 명절에는 저절로 들어오는 기부도 받지만, 누군가의 공명심과 측은지심, 그것도 아니면 분위기를 이용해서 기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는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는 많은 절차와 이야기가 있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기부를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난 세상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다. 복지도 세일즈라는 생각을 하면서 당시에는 확실하게 감사와 홍보도 충실히 하면서 일했다. 사실 그분들이 있기에 정부가 하지 못하는 것을 채울 수 있고,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내 한 달 월급보다도 많은 돈을 봉투로 턱 받고서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 보았다. 500만 원이라는 돈을 쫙 펼쳐보니, 모양이 따뜻했다. 내 돈이 아님에도 뿌듯한 것은 누군가의 피와 땀이 누군가에게 피와 살이 되어가는 중요한 종잣돈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익명의 기부자가 쌀과 돈을 아무 대가 없이 내놓은 모습을 보면서는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곳이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는 선한 분은 과연 어떤 미소로 그리 큰돈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단순한 복지 전달자로는 쉽게 가늠하지 못할 큰 마음이다.


비록 내 일이 좀 더 늘어나서 쌀 포대를 나르는 작업을 좀 하겠지만, 땀을 흘리는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뿌듯함을 또 어느 가정에는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드릴 수 있다면, 감사하고 또 고맙게 힘을 쓰련다. 아직 명절은 오지 않았지만, 커피 한 잔 값을 줄여서라도 아니면 술 한 잔 값을 누군가에게 나눈다면 어떨까?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 스스로 느낀 반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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