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생각해 본다
나의 입사 첫날은 무척 더웠다. 더운 것을 떠나서 습했다. 가뜩이나 땀이 많았던 나는 익숙하지 않은 정장과 넥타이에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상사가 권한 넥타이와 상의 탈의 권유에 냉큼 털어 버리고서야 내가 취업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서른두 살. 늦다면 늦고 적당하다면 적당한 나이에 그래도 좋은 직업군으로 꼽히는 공무원이 되었다. 얼마나 감사했던 일인가? 준비했던 관공서가 다르지만, 일을 하면서 벌 수 있는 통장 잔액이 단 몇 푼이 아니라 다달이 들어온다는 예측 가능성은 곧장 가난을 탈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게 했다. 적어도 2014년도에 나는 그런 마음으로 입사했다.
매년 들어오는 신규 직원들을 보면서 당시를 떠올린다. 참 열심히 일했던 그 신규 시절을 말이다. 그리고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는 속담을 실천했다. 나도 생각해 보면 참 어리바리한 신규 직원이었다. 좋게 말해서 우직했고, 실제로는 너무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못했다. 직장 생활이 군대의 연속이라는 막연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 그 당시에는 신세대 직원이었는데, 지금의 신규 직원들 틈에서 본다면 난 마흔을 넘긴 아저씨다.
아마도 코로나 시국이 기점이 된 것 같다. 딱딱한 공직사회에도 조금은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주력은 90년대 사람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발언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의미로 어색하다.
나는 어떤 신규였을지 생각하면서 더불어 내가 지금 어떤 선배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나름 독특한 휴직 이력으로 뒤에서 나에게 상담을 청해 오는 지인들은 있지만, 뒤에서 어떤 말을 하는지는 또한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지만, 다른 의미로는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다만 난 글도 쓰고 있으니 더 나를 보여주는 상태라서 오히려 평범하게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간혹 나에게 가혹했던 민원을 생각하면, 신규 시절에 모습과 지금 신규들의 눈물이 겹쳐 보인다. 그리고 아직도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서 마흔이 넘도록 적성을 찾지 못하는 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난 후배들에게 흘리듯 말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그러다가 다치는 것이 너무 아프다고 말이다.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지 일과 환경에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지칠 것이라 충고했다.
물론 이러한 충고를 진지하게 들어줬던 후배는 없었다. 다들 각자의 삶이 있듯이 각자 막내의 포부가 있을 테니까. 그래도 나처럼 돌아가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휴직해야 한다면 육아 휴직을 권하고 싶다. 아파서 쉰다는 것은 말리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에 남기는 나도 이젠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오랜만에 첫 입사일에 입었던 정장을 입을 일이 생겼다. 거의 정장보다는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일을 하는 나에게는 드문 일이다. 여름 정장도 아니고, 봄 정장을 입고도 출근을 했던 우직했던 32살의 나는 없었다. 거울을 보니 참 나이가 슬슬 보였다. 그래도 그땐 참 든든해 보였는데,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살짝 미소가 보이면 좋을까 싶어서 웃어 보았지만, 어색하다. 그래도 이 나이에 당시에 정장이 맞는다는 것을 생각해 내니 기쁘다는 듯 실소가 터졌다. 다행이라면 실소에 지어낸 미소가 거울에 비쳐서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