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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Aug 12. 2022

내 이름은 이춘노

전국에 내 이름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춘식이’


  마흔이 된 아재 차량에 있는 인형 이름이다. 라이언이 사자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고, 귀여움에 빠졌던 어느 날. 사람들이 나에게 정체불명의 고양이 캐릭터를 보내왔다. 바로 '춘식이'다. 아마 녀석의 한자 이름이 있다면, ‘춘’은 봄 춘(春) 자를 쓸 것이다. 그 이름의 한자는 거의 다 그렇다. 지인들의 은근한 추천(?). 그 후로 나는 이 길거리 출신으로 성별 미상의 고양이며, 라이언의 반려동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양이도 좋아하지만, 주된 이유는 이름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2005년 무렵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다. 스토리는 촌스러운 이름과 뚱뚱한 외모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전문 제과제빵사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30대 노처녀 김삼순의 삶과 사랑을 잘생긴 현빈과 풀어간 드라마. 주인공 같은 사람이 여기 있지만, 나는 결국 삼순이처럼 되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는 마흔이 되어버려서 슬슬 결혼도 포기했다. 이런 면에서 역시 드라마는 허구적이고, 현실은 너무 비극적이다.      


  사실 나는 어릴 적에는 내 이름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었다. 이름이라고 해봐야 주변 사람이 항상 그리 불러왔고, 좀 멋진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가고, 군대에 가면서 내 특이한 이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름만으로 타인이 느끼는 각인 효과가 너무 컸다.

  일단 발음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항상 “추노”,“춘호”,“준호”등으로 불렸고, 드라마 ‘추노’가 방영되면서는 장난처럼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춘’ 자가 들어가면 뭐가 되었든 이름이 촌스러워졌다. 그렇다고 ‘노’ 자는 돌림자라서 계절적 영향으로 이름이 정해졌다면, 춘(春), 하(夏), 추(秋), 동(冬)의 네 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그러다 가을에 태어났다면, 정말 추노가 되는 거였나? 이름을 작명하신 할아버지께 여쭤볼 틈도 없이 돌아가신 터라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게다가 연애를 하면서 어쩐지 이름을 부르며 “~ 씨”,“~ 오빠” 하면, 좀 분위기가 흐려지는 감정은 기분 탓일까? 하여튼 성인이 되고서는 이 특이하고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좀 고생이 많았다.      


  이 정도가 되니, 전국에 내 이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보긴 했다. 이제는 추억의 싸이월드에서 나보다 10살 많은 어떤 형님이 있었다. 외모도 비슷하고, 기차 여행이라는 취미도 같은 것이 잃어버린 형님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입사를 하고 심심해서 내 이름을 쳐보니 인천에 어느 장애인 복지관 관장님이 계셨다.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 같은데, 신기하게도 이분도 나와 직업적 결이 비슷했다. 정말 누가 보면 내가 관장이라고 해도 믿을 분위기였다. '장애인 복지관장 이춘노' 어울리지 않나?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지 모르겠다. 그럼 왜 개명을 안 했을까? 이 정도 이름이면 법원에서도 100% 받아줄 사유는 충분한데 말이다. 사실은 귀찮아서 못 했다. 군대까지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개명이라는 복잡한 절차는 먹고사는 문제에 비하면 중요 순위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럴 고민할 틈도 없이 마흔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렇다고 내 이름이 딱히 싫은 것도 아니다. 초기에 작가명을 ‘추노’로 한 것도 이름 따라서 지은 것이었고, 40년을 함께 살다 보니 나와 주변은 입에 착 붙어 버렸다. 게다가 워낙 특이한 이름이라서 포털에 이름만 치면, 브런치 작가로 바로 나온다. 정말 독특한 이름이 가지는 정보의 선점은 최대 장점이다. 그리고 한 번 제대로 각인되면, 이름을 잊을 수 없다. 또 나이가 점점 먹어가니 이름에 대한 거부감도 슬슬 무뎌지고, 오히려 같이 늙어간다고 할까? 그래서 이렇듯 대놓고 작가명도 공개한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어떠한 의미일까?


  '춘식이'도 이름이 불려지기 전에는 그냥 귀여운 인형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정말 수많은 인형들 중에서 '춘식이'가 사랑받는 것은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설프게 "고양이 인형"이라고 퉁치듯 부른 게 아니다. 저 촌스러운 이름에 귀여움이 더해져서 유명해진 것이겠지. 

  가끔 용산역 카카오 프렌즈를 지날 때면, 내 이름을 닮은 ‘춘식이’를 보면서 슬쩍 부럽게 구경했다. 참 촌스러운 이름임에도,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기왕에 개명도 하지 않을 거라면, 내 이름에 당당해지려고 한다. 촌스럽다고 숨길 것도 아니고, ‘춘식이’처럼 유명해져야겠다. 그것도 나를 사랑하는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바로 내 이름을 크게 외치는 것 아닐까? 

    

  “내 이름은 이춘노”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름이 생겼다는 것은, 어딘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이름으로 추억될 것이다. 내 삶의 존재의 이유. 그리고 증거. 그렇기에 애정을 담아서 내 이름을 불러 본다.

  좀 멀리까지 들리까? 전국에 있는 이춘노 중에서 가장 밝은 의미로 유명해지도록 말이다. 아무리 촌스럽다지만, 내 이름을 사랑할 수 있게 살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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