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를 떠나보내며 적어낸 송별사

너의 앞길에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길 바라며

by 이춘노

마음에 빚이 있었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살았는데, 그 녀석을 떠올리려니 심장을 꾹꾹 찌르듯이 양심에 걸렸다. 2014년에 함께 시작할 무렵, 7명의 사회복지 공무원 신규들은 모두 총각이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장가를 못 간 나를 포함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했다.

내심 그래도 동기의 결혼식은 꼭 가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는데, 한 녀석만 그 약속 지키지 못했다. 결혼식이 있던 그 주에는 어머니 암 수술이 있었고, 태풍까지 몰려와서 난리였던 그때. 유일하게 동기 결혼식을 참석 못 했다. 그게 송별사라는 내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마음에 걸렸다.

송별사라고 하니 짐작하겠지만, 나의 동기는 8월 12일에 상급 기관으로 전출 간다. 물론 좋은 일이고, 여러 가지로 축하할 일이기에 즐겁게 보내줘야 한다. 그런데도 ‘송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쓸쓸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기에 ‘보낸다.’라는 말이 어색하다. 또 정년까지 쭉 장난치며 살 것 같은 개구쟁이. 그 얼굴을 못 본다는 생각을 하지도 안 했기에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와 다른 동기들도 그런 상황은 내심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 그 녀석이 떠나는 주에 우리가 모두 함께 임용했던 8월 8일이 끼어 있다. 어렵게 모인 우리 동기들이 해마다 축하하던 입사일에 참석 못한 녀석의 빈자리가 왜 이렇게 어색한지. 항상 그렇게 빈틈없을 것 같은 착한 교회 오빠가 우리에게 미친 웃음을 주었으니까. 그런 녀석이 있어서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먹고 싶은 것을 푸짐하게 먹고, 우리 동기답게 술 대신 음료수를 여러 병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묘하게 허전했다.

생각해 보니 다들 참 많이 늙었다. 그간 한 세월이 가는 동안에 총각에서 유부남이 되었고,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동생이었던 녀석이 어느 순간 든든한 친구이자, 버팀목이 되어준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젊음을 양분 삼아서 사람을 크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참 든든했던 동기가 이젠 떠난다.

아마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연인의 사랑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인생사가 모두 그러하니까. 동기 하나가 나간 단톡방에서의 장난도 한풀 꺾일 것이다. 그리고 소식도 뜸해지고, 동기의 소식을 누군가를 통해서 듣는 것이 일상이 될 무렵이 곧 오겠지. 어쩌면 순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별명으로 부르며 버벅거리는 순간도 올지 모르겠다.


솔직히 아쉽다. 함께 일하고 싶다. 주변에 그만한 사람도 없음을 알기에 아깝고, 못난 형을 위해서 맘 아파해준 고운 마음을 알기에 더 안타깝다. 그래서 떠나는 동기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항상 툭 던지듯이 ‘잘 가’라는 말로는 부족해서 동기를 따로 찾아가 인사도 했다. 그래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듯 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떠나는 동기에게 송별사를 적어 본다.


이별이 아쉽지만, 또 슬프지만 웃으며 보내련다. 그리고 내 별난 사진 찍기 습관이 이토록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긴 처음이다. 아마도 과거의 모든 추억을 공유할 증거들이 남았으니까. 그걸로 된 것 같다. 비록 지금은 보내지만, 우리들의 사진은 어딘가 저장되어 있으니까. 생각나면 핸드폰으로 꺼내 볼 수 있다. 그렇게라도 추억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영영 떠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송별이라고 말하지만, 조금이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나의 동기에게 한마디만 남기고 글을 마친다.

“진호야.

동기 사랑은 나라 사랑이고, 한 번 동기는 영원한 동기니까.

좋은 일, 나쁜 일 조차도 앞으로 함께 나누며 살자.

부족한 형으로 너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는데, 고마웠어.

그리고 앞으로 너의 앞길에 행운과 건강이 함께하길 빌게.”


잘 가라 나의 동기.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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