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19
30대가 끝나는 시절까지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분노이다.
나도 그렇지만, 주변에 분노와 따지는 버릇이 많은 지인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를 자주 냈다. 아무리 차분하다고 자부하지만, 상대의 도발에는 나도 맞대응하는 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그것으로 생각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결투를 하면 말로는 져 본 적은 없다. 나 스스로는 논리적이라고 생각했고, 상대가 참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뤄진 싸움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나는 두 번의 휴직을 했고, 아프기만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에 상대를 보면 표정 관리가 안 되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싸움하는 순간 결국은 진 것이다. 통쾌하게 쏘아붙이고는 이긴 것 같지만, 하나하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건 질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은 본인 뿐인 상황. 그러한 사람들과 열띤 토론을 하다 보니 마흔이 넘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과거라면 상대를 어찌 되었건 이기려고 했던 시절에 나라면 절대로 참지 않을 일들이 잠시 땀을 흘리고 나면 차분하게 잊고 말았다. 확실히 경험이 쌓이고, 분노가 조절되는 약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찡그린 얼굴도 하룻밤 지나면 그냥 무덤덤해진다.
시시한 감정싸움에 더는 나를 혹사하고 싶지 않다. 정말로 대강 살고 싶은 마음이라면,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타인과의 감정 정리이다. 절대로 분노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부모한테 반항하는 자식들이 하는 짓은 지나고 보면 쓸데없는 객기이다. 철없는 짓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고 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목숨 걸고 달려들었다. 그래 봐야 상처뿐인 것에 집착하고, 저주했다. 그건 아무리 종교를 가진 사람도 비슷한 속성으로 당하고 만다. 과연 분노가 쌓인 사람이 갖는 기도가 누군가를 위한 기도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그건 오직 신과 본인만 아는 이야기이겠지.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과감하게 기권했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그냥 속으로 웃기기도 하다. 상대가 날 이기려고 하는 행동들이 나의 기권으로 허무하게 허공을 맴도는 것을 보고 있자면, 통쾌한 기분도 들어서이다. 당장은 이겼다고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인생을 돌아보니 그런 사람 치고 결말이 좋았던 자는 별로 못 봤다.
그래서 아침에 감사하고, 저녁에 반성하는 나의 일과는 중요했다. 가끔은 나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지만, 이내 침착해지고 웃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러한 나만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참 웃기지 않는가? 가족을 위해서 평생 살았다는 부모나 아니면 누군가를 위해서 헌신했다고 자기 위안을 삼는 모두가 결국은 본인을 위한 시간을 얼마나 갖고, 돌아봤느냐는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을 말이다. 그건 이기지 못해서 분한 사람의 마음보다 더 부끄러운 행동 아닐까 싶다.
사실은 속으론 알고 있지 않았을까? 본인이 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는 애써 잊은 것은 아닐지? 합리적 의심을 해볼 만하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에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