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사 모으는 것이 취미이다. 아마도 적지 않은 돈으로 책을 구매하지만, 수십 자루의 여분을 가진 다양한 펜을 가진 습관은 메모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만큼 많은 글씨를 남긴다. 남기는 그것까지는 좋은데, 형태가 참 엉망이다. 내 메모를 본 직원들은 나에게 다시금 와서 해독을 요구했다. 어쩌나 이런 글씨가 생겼을지? 단순히 남자라서 글씨를 못 쓴다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학창 시절에 출석부를 곱게 적던 반장의 모습도 기억한다. 그리고 별다른 일은 안 하셨지만, 정갈한 필체로 붓 펜을 쓰시던 상사의 모습도 기억난다. 어디까지나 글씨의 형태는 성별의 문제도 아니다. 물론 아무리 메모를 좋아하는 나라고 하더라도 기분에 따라서 조금은 참하게 기록하는 순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히 기분 좋고, 몸 상태도 제법 괜찮은 날만 그렇게 적었다. 그때는 누구나 내 글을 읽어도 오독이 없다. 그러나 그런 어디까지나 1년에 보름달을 보는 수만큼의 운 좋은 날이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쓴다. 쉽게 고치고, 형태도 정확한 노트북에서 글을 남기는 것보다, 손때가 가득한 노트에 악필로 쓴 글이 좋다. 그래서 기분에 따라 필기감이 좋은 펜을 수집하고, 글을 쓰곤 했다. 그런 나의 낙서를 다시금 옮겨 적은 것이 글이 되었다. 나이답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다.
이런 감성은 때때로 귀찮음을 동반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되는 것을 가방에 노트도 담아야 하고, 필기감이 있는 펜도 몇 자루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종이 책을 한 권 넣다 보면, 어느새 책가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난 출근길에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가방과의 인연은 아마도 평생을 이어 갈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나의 노트와 다이어리가 방안 곳곳을 채우고 있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머릿속은 참 복잡한데, 이것저것 노트에 적다 보면 정리가 된다. 그리고 정리된 것들을 다시금 이어가다 보면, 생각이 해결로 바뀌는 마법을 보인다. 아마도 나에게는 이러한 엉망인 글씨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처럼 반복이 되는 다짐과 생각과 이야기를 적고 적다 보니 이렇게 글도 쓰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세상을 등지는 시간이 오더라도 정갈하지 못한 글씨로 유서를 쓰는 작업을 꼭 거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기 때문에 손에서 펜을 놓을 수 없다. 글씨가 엉망인 것을 알지만은 나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낙서가 아니기에 소중한 한 글자 두 글자다.
오늘도 글을 썼다. 나의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을 수 있는 하루가 있음을 감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투정 같은 문장에서 감사함을 담은 반성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것에는 검은색이 아니라 파란색 펜으로 정자로 또박또박 적어 보았다.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보냈고, 피곤하게 잠들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말은 차마 엉망인 글씨로 할 수 없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