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사람을 대충 살게 하기도 하지만 바쁘게도 한다
섬진로 27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잘 몰랐다.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하다는 것을 말이다. 보통의 IMF 세대들이 느끼는 공통점이다. 가난과 부자의 경계가 구분되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내가 공부하고 대학만 갔으면 대충 취업하면서 살아온 세상이었다. 그러다 그게 구분되는 시점이 IMF였다.
뉴스도 안 보던 고등학생이 뭘 알았겠는가? 단지 좋아하는 책이나 좀 읽고, 친구들과 놀던 것만 기억났다. 그리고 대학을 갈 무렵에서야 가난이 내 선택을 좁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선택을 좀 좁게 하면 살아갈 순 있었다. 그건 좋게 표현한 것이고, 시간을 벌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 같다.
실제로 가난하면 별다른 노력을 하기 싫어진다. 열심히 살아봐야 어차피 그 자리에 맴돌고, 동사무소에 문을 두드리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런 포기를 하는 것도 아마 가난하기에 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렇게 대충 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가난도 운이 있어야 평탄한 삶을 살 수 있다. 가난한데, 갑자기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갈 수도 있다. 어쩌면 도전해보겠다는 공무원 시험에 계속 낙방하다가 만나던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더 슬픈 것은 그 상황에 돈이 없다는 점이다.
난 20대 중반에는 미친 듯이 공부를 했고, 입사 전까지는 이른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았다. 하루 벌어서 하루 살아간 막노동은 못 하겠지만, 한 달 벌어서 한 달 살아가는 바쁜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사회복지 자격증을 취득했고, 기존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시험을 봐서 고향에 내려왔다.
여기까지 보면 나름 성공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남들과 출발선이 다른 사람이 기껏 노력해봐야 역시나 따라가기는 벅찼다. 돈이라는 것은 있으면 구르고 굴러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속성이 있다. 반대로 가난은 굴리고 굴려봐도 눈이 잘 안 뭉친다. 애초에 같은 눈이라도 잘 뭉치는 눈이 있고, 흩어지는 눈이 있듯이 가난은 노력해도 벗어나기 힘들었다.
한 3년을 노력해보다가 포기했다.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안되는 이유로 별난 내 성격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결론은 역시 돈이었다. 고민 대부분이라는 것들이 어찌 보면 돈만 있으면 해결되었지만, 문제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매주 로또를 샀지만, 알지 않던가. 로또는 꿈이라는 것을.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할 무렵에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다. 꼭 나의 인생의 변곡점에는 부모님의 큰 병환이 찾아왔다. 가난하지만 포기하지 말라는 일종의 하느님이 내려주신 시련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좋게 웃으면 넘겼지만 몹시 화가 났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사실 결론은 알고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나는 열심히 살아야 했다. 길게 쉬어도 봤지만, 그 삶도 돈이 있어야 하기에 일을 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것도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정말 바쁘게 살아야 했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열심히 해서 해결될 수준이거나 내 마음이 진정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만 그동안 그렇지 않았기에 노력이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생각에는 변화가 없지만, 남들 보기에도 난 바쁘게 살고 있다.
이유는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대충 살 수 없는 이유가 가슴에 박혀 버린 것은 아닐지?
억지로 출근하는 것은 모두 같지만, 나는 다짐해본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자.
하루하루 버티다보면 정말 대충 사는 순간에 오늘 하루의 노력이 도움되는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