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26
점퍼도 운동화도 벗었다. 오늘은 모처럼 정장에 구두를 챙겨 보았다. 그리고 휴일에도 어김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던 나는 모처럼 하루의 일정을 비웠다. 아마 나의 고집스러운 패턴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척 놀랄 일이다.
‘특별한 날이냐?’ 묻는다면
답은.
‘그렇다.’
바로 내가 아는 S 양이 시집가는 날이다. 아무리 엉덩이가 무거운 나였지만. 오늘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약속이었다.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겠다고 했던 흘리듯 말했던 약속 말이다.
살면서 나에게는 다양한 후배들이 생겼다. 수험 생활을 같이 고생하던 후배도 있었고, 입사 후에는 나보다 더 원칙적인 녀석이라서 무서워하는 후배도 있다. 또는 휴직하면서는 미안한 후배도 제법 생겼다. 그리고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후배가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S 양’이다.
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나를 바라본 첫인상이 어떠했을지? 상상만으로도 우울하다. 한숨과 어둠이 그득한 선배의 얼굴에서 아마 연민보다는 불쾌감이 있었을 것 같지만, 신규였던 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갑자기 휴직하면서 내 뒤를 이어받은 업무도 부담이 되었을 후배는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괜찮아요.”
설령 그것이 인사말이라고 하더라도 난 그 말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휴직했다. 그 마음의 채무는 휴직을 입 밖에 꺼내면서 아마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실질적으로는 내가 처음으로 사회복지를 알려준 후배지만, 같은 공간에서조차 같은 업무를 해본 적은 없는 사수 아닌 선배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잘한다.
의외로 소심하면서도 사람도 챙길 줄 아는 모습과 배려도 그렇지만, 외모만큼이나 일도 참 잘했다. 나였다면 저렇게 못 했을 것 같다는 감탄도 했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 소식을 전하고, 직접 준 청첩장을 건네받고는 주책없이 웃음이 났다. 아무래도 미안한 마음이 깊어지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나 보다. 감격스러운 마음에 달력에 그날은 가겠노라고, 붉은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예식장에서 과거에 함께 일한 면사무소 직원을 두루 만났다. 아마도 이곳은 내 휴직 후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신고식이기도 했다. 반갑기도 하지만, 무척 어색함이 공존하는 공간. 인사와 축하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이곳의 주인공은 수줍게 신부 대기실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신부보다 더 수줍게 사진을 찍기 위해서 신부 옆에 앉았다. 사진사가 너무 어색하다고 하는데, 민망하게 좀 더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인생의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 그 주인공인 신부에게 나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 걸까? 선배라기보다는 오빠의 심정으로 생각해봤는데, 결국 ‘잘 살아라~’라는 상투적인 말을 던지고 다른 하객들 물결에 밀려서 제대로 말도 못 했다. 아마 사무실이었으면 툭툭 던졌을 장난도 긴장과 기쁨이 가득한 신부 앞에서는 괜히 말하기 부끄럽다.
그래도 참 아름답다고, 그리고 무척 고운 신부라고 말은 해줬어야 하는 생각에 아쉽다. 하지만 다행이다. 휴직하고, 복직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그러한 여러 일 중에서 꼭 가야 할 결혼식에 내가 참석했고, 얼굴을 마주하고 축하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더불어 어떻게 축하해주는 것이 좋을까? 봉투와 축하의 말로는 부족해서 오늘의 감정은 그녀의 기념일에 글을 남기며, 사진처럼 볼 수 있는 흔적으로 영원히 축복하고 싶다. 그것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후배에게 줄 수 있는 선배의 마음 채무 이행이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오늘 너는 참 곱고, 이뻤고, 행복해 보여서 참 보기 좋았다.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