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30
폭설이 내리는 아침에 버스 정류장 운행 정보 모니터를 보고, 시계를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이 버스를 놓치면, 나는 제설차가 한 번 지나갔을지 모를 길을 의지해서 직접 운전해야 했다. 이미 차를 포기하는 순간에 한 뼘은 쌓인 눈을 차에서 걷어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다행히 미리 알아둔 버스가 신호 대기를 위해서 횡단보도에서 멈춘 것을 보고는 안도했다. 그렇다 오늘은 연이틀을 차를 놓고 출근 중이었다. 집을 나서서 도착까지 보통은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다만 딱 출퇴근 시간을 위한 버스라서 이걸 놓치면, 출근을 포기해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음 버스는 너무 시간 텀이 길었다.
첫날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서 털 장화를 착용하고, 비상시를 대비해서 양발과 모포도 챙겼다. 계속되는 비상근무에 혹시나 사무실에서 밤을 보내야 할지 몰라서 챙긴 물건들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꽤 멀고 외진 곳에 속한다. 그래서 버스도 적고, 주로 자기 차를 이용하는데, 폭설을 대비해서 버스 노선을 알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과연 버스가 고개를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역시나 버스를 타자마자, 기사님이 제설이 안 되었으면 회차를 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하셨다. 어찌 되었건 난 출근을 해야 했다. 도착하면 제설 장비도 꺼내서 일단 면사무소 입구와 주차장을 열심히 밀어야 했다. 아니면, 도로 주변에 쓰러진 나무나 장애물을 치워야 할지도 몰랐다. 여하튼 목숨 걸고 출근해야 일을 할 수 있었다.
무심하게 창밖을 보면, 참 아름다웠다. 아마 학창 시절에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낭만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군대 이후로는 그런 감성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유는 너무 간명했다. 그것을 감상하는 입장과 치우는 처지가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정도는 감상이었다면, 그 반절은 치우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까지 해야 하는 책임도 갖고 있기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절대 반갑지 않았다. 역시나 고개를 넘어가면서 차량 엔진이 버거워했다. 살짝 뒤로 밀리는 버스 승차감은 긴장감과 걱정을 동반했으나, 기사님의 운전 기술로 안전하게 넘었다. 덕분에 면 소재지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치우는데, 나머지는 포기했다. 사람이 다니고, 급하게 주차할 곳만 사람의 힘으로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다 도로에 나무가 쓰러졌다는 민원에 치우러 갔다가 와보니 아직도 눈을 치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이미 붉은 목장갑은 축축한 상태였다. 또 몰려드는 민원 전화를 받다가 중간중간 염화칼슘을 배부하다가 보면 오후가 왔다.
다행히 각오했던 비상근무는 오후 늦게 해제가 되면서 누군가의 목숨 건 운전으로 조심히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하늘이 내리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사무실을 나왔다.
오늘 나는 버스비 1,000원에서 카드 할인을 받아서 950원의 행복으로 출근을 했다. 다행히 950원으로 안전하게 출근할 수 있었고, 하루 몸이 뻐근하게 눈을 치우느라 몸을 썼지만, 사무실에서 잠을 자지 않고 퇴근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다. 눈이 너무 와서 오버스러운 주말이지만,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이다. 모두 그럴 수 없겠지만, 별 눈 피해 없이 즐거운 주말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