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잠을 청한다

섬진로 31

by 이춘노

사람이 제일 괴로운 것이 무엇일까?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것으로 생각했다. 분한 마음. 혹은 무엇을 이루지 못해서 억울한 감정. 그리고 타인에게 비난을 받거나 무능함을 지적받는 화끈거리는 순간 말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오히려 불면증이었다. 20대에는 절대 느끼지 못했을 초시계 소리가 잠을 깨웠다. 어느 순간에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알람처럼 나를 흔들었다. 단순히 그러한 순간의 진동으로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예민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난 눈치가 없다. 다량으로 마시는 커피가 문제였다면, 한동안 커피도 끊어 보았다. 향초도 피웠고, 수면 영상도 틀어도 보고, 운동도 했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난 두 시간 이상 이어서 잠을 청하지 못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였으니, 거의 수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솔직히 상담을 통해서 우울감과 심리적 강박히 있다는 것도 함께 치료받으면서 말이다.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잠을 못 자면 사람은 멍해진다. 적어도 멍해지는 정도는 주말에 잠을 푹 자고 나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문제는 그런 해소가 없이 쭉 이어지는 불면증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람은 예민해진다. 게다가 화도 난다.

단순히 잠을 청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 어찌 보면 아픈 짐승으로 변하고, 마음을 잃는다. 쉽게 말해서 사회생활에 무리가 따른다. 적절히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먹고살려면 웃는 모습이 필요하다. 아니면 그 일은 못 한다.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화가 난 모습을 경험한 사람이 가만있을까? 본인은 화를 내도 공무원은 듣기만 해야 하는 것이 보통의 모습인데, 조금의 표정 변화에도 민감한 사람들이 내 짜증을 못 느낄 리 없다.

상사는 또 어떨까? 세상 어느 상사가 부하 직원의 마음을 이해하는 선한 사람이 있던가? 다 알아서 맞춰주는 부하 직원에게 익숙한 위치이다. 적당한 연기가 필요한 인간 세상에서 짐승이 되어버린 인간은 야생에서 도태된다.


나도 그랬다. 나는 스스로가 더 못 견디게 화가 났다. 그보다 더한 것도 참고 살아온 젊음에 부끄러웠다. 폐기하는 삼각김밥을 먹으면서 공부하던 시절이나,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서 노숙을 하듯이 병원에서 잠을 청하던 시절에도 참았다. 무엇이 그리 자신이 있었는지? 꿈이란 거 있던 시절에는 가난도 견뎠다.

그런데 기껏 잠을 못 자더니 짐승이 되었다. 그 순간에는 돈도 그간 쌓아온 신뢰도 다 필요 없었다. 그냥 잠을 자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무뎌지더니, 이내 아침이 무서웠다. 깨어있는 순간에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화를 내는 듯한 약간의 공포가 몰려오자. 장이 뒤틀린다. 이내 먹었던 것을 다 쏟아 내고 나면, 다시금 피곤이 몰려왔다. 그땐 정말 모든 것이 싫어졌다. 차라리 죽고 싶어졌다.

그런 경험은 나를 우선 잠을 청하는 행위가 우선이 되게 했다. 일단 눈을 감는다. 필요하다면 약도 먹었다. 아니 먹어야 했다. 아니면 또 1시고 2시고 깨어날 것이다. 대충이라도 눈을 감고, 기도했다. 제발 푹 자게 해 달라고, 아마도 그래서 난 하루를 열심히 사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대강대강 살려면, 잠을 자야 하니 하루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야 그나마 인간답게 잘 수 있으니까.

어찌보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정의하기 쉽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장땡이다. 그리 살려고 난 이리 돌고 돌았나보다.

생각해보니 사람답게 사는 거. 참 쉽기도 하면서 어려운 숙제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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