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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r 05. 2023

나는 나비 고양이

우체국에는 나비들이 산다

자신의 구역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들

  모처럼 점심을 먹고, 밖을 나섰다. 나에게 점심이란 그냥 배를 채우는 단순한 수준인 간단 작업이다. 그렇기에 점심시간은 여백의 시간이 생긴다.

  그동안에는 추위 때문에 잠시 잊고 있던 산책을 햇살과 더불어 함께 했다. 물론 그래봐야 인근 우체국과 소방서, 학교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식빵을 굽고 있는 고양이다.

  2002년 정도에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이란 노래를 들었을 때는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최근에 수면 내시경 중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나비~고양이~"하면서 즐겁게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출퇴근 길에 다시 듣기 시작했다.


  생선가게를 털지 않고, 바다를 떠난다는 낭만 고양이는 가사만큼이나 멋지지만, 실상은 내 주변엔 낭만보다는 그냥 나비들이 많은 것 같다. 육중한 몸으로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한 마리 나비 같다는 생각은 나만 들었던 착각일까. 잠시 멍하니 고양이를 바라보는데, 손님이 오셨다. 인근 학교에 있는 선생님 집사였다.


  "사각사각~"

  사료에 담긴 사료 소리에 아이들이 반응했다. 꼬리를 치켜들고, 모여드는 폼이 하루 이틀 오는 날이 아니었다.

  그렇게 면사무소 집사와 초등학교 집사가 고양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이 지나면서 반절이 줄었네요."


  어쩜 내 또래인 동성의 집사와 이야기는 처음이었으나, 그래도 우체국 뒤편에서 자리를 잡고 사는 고양이들이 겨울을 어찌 보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모른 척했던 현실에 잠시 먹이에 집중하는 녀석들이 측은해 보였다.

  그래도 낭만 고양이까진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에 이 녀석들은 온종일 햇살을 느끼고, 친구들과 뛰놀면서 더불어 남녀노소 집사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나비 고양이라고 불려도 되지 않을까?

  밥 다 먹고, 웅크리고 잠이 든 한 마리 나비를 보고는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나도 저절로 미소가 생겼다.

  아무래도 오늘은 퇴근길에 나비고양이 노래를 들어야겠다. 그냥 오늘은 나비고양이로 들리는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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