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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y 21. 2023

밤 산책을 하다가 빛토끼를 만나다

우울한 사람이 걸어야 하는 이유

  핑계가 많았다.

  비도 왔고, 주말에 아팠고, 친구와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다. 또 허리가 아파서 걷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좋은 이유들로 난 한 달 넘게 밤 산책을 하지 않았다.


  눕는 게 너무 좋은 마흔 아저씨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글도 책도 누워서 챙겼다. 옷과 책과 이불뿐인 방에서 굳이 앉을 필요도 없었기에 난 당연한 듯이 누었고, 밥 먹고 바로 눕는 오만한 행동으로 살을 불렸다.

춘향제가 5월 25일 부터 시작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컵라면과 햇반을 챙겨 먹고는 토요일 밤에 산책을 나왔다. 허리의 통증이 있어도 한의원 치료 덕분인지. 그럭저럭 걸을만했다. 다만 긴팔과 반팔의 경계가 모호한 날씨 덕분에 두꺼운 후드티를 입고는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아래 못 보던 불빛들이 보였다. 아마도 <춘향제>가 시작되기 전에 조형물을 설치한 것 같았다. 전통적으로 천변에 나무다리를 설치도 하는데, 그 전후로 귀여운 나무 조명 아래 토끼가 여러 마리 앉아 있었다.

  마흔이 넘었지만, 저렇게 귀여운 것들은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바로 카메라를 꺼내고서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꽤나 인기 많은 포도존이 될 것이다. 이미 내가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부모들이 토끼보다 더 귀여운 자녀들에게 사진으로 추억을 남겨 주고 있었다.


  곰같은 외모가 사진을 찍으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알고보면, 나는 꽤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어찌 보면 알 것 같은 성격이지만, 그렇지도 않기도 하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렇겠으나, 우울이라는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은 자기 보호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내보인다.


  일단 우는 사람도 있다. 딱 봐도 우울한 이야기만 한다. 삶의 모든 것이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주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 그렇기에 흔히들 그리 말한다.


  "우울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전염되는 것 같아."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꽤 고생을 했다. 그와 다른 경우는 의외로 외향적인 사람인 경우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 리더십도 있다. 그럼에도 심리 상담이나 우울증이 있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강해 보이지만, 그런 경우는 부러지기 쉽다.

   나는 반반이다. 꼼꼼하지만, 일을 시작하면 거침이 없다.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틈에서도 말을 잘한다. 게다가 눈치를 보기에 주변 공기도 파악해서 상대방과 큰 트러블도  없다.


  솔직히 나는 꽤나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휴직과 복직을 경험하면서 난 우울하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그렇게 드러내는 행동은 주변에 경계나 반감을 사는 경우가 많다. 좀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는 생각에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툭 터놓고 주변에 고백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렵게 일과 개인 시간의 나를 구분하는 투페이스의 삶을 작년부터 연습하고 있다.  


  사실 그 경계가 살짝 아픈 몸으로 인해서 무너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걷기 시작하면서 빛나는 토끼를 만난 것이 참 반가웠다.

  몸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무작정 걷다 보니 다리가 아프고, 항상 누워 있던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이어리에 오늘 한 일을 남길 수 있기에 좋았다.

  가끔은 꽃도 보았고, 물 마시러 온 고양이에게 밥도 주었다. 적절하게 흘렀던 땀을 씻기 위해서 옷도 갈아입고 샤워를 하면서 면도도 했다. 덕분에 비만에서 아슬아슬한 정상 체중 범위에 들어왔다.

  난 그래서 우울한 지인이 있으면, 일단 걸으라고 조언한다. 둘이 할 필요도 없고, 일단 걸으면 모든 면에서 생산적이니까.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성대한 축제들이 곳곳에서 진행될 것이다. 남원도 지금 춘향제 준비로 분주하다.

  일도 늘어나고 더운 날씨에 행사 참여로 인파 속에서 힘든 일정을 소화하겠지만, 밤에는 차분하게 걸으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다.


  빛나는 토끼도 낮에 보면 그냥 단순한 조형물이지만, 어두운 밤이 있기에 저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있으니까. 나의 우울도 언젠가는 노력을 빛나게 하는 배경이 되겠지? 뭐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밤에 나를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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