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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n 03. 2023

마흔을 시작하는 건강검진

이젠 만 나이로도 마흔이다

  눈을 떴더니 간이 이동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 눈 뜨기 전에는 의사가 입으로 기다란 호스를 넣고 있었는데, 깨보니 아무 일 없단 듯이 누워 있다.

  나는 방금 전까지 위내시경을 받고 있었다. 홀수 출생이라서 총무과의 권고 공문을 받기도 했지만, 기왕 받는 거라면 좀 대기 없이 느긋하게 받고 싶었다. 그래서  3~4월을 예상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6월로 미뤄지다가 남들은 여행 가느라고 연차를 내는 6월 2일에 예약을 했다.


  깨어났으니 호출벨을 눌러도 되는데, 잠시 이 고요함을 즐기고 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검사를 위해서 차도 놓고, 택시와 기차와 시내버스를 타고 너무 이른 시간에 왔다. 게다가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도 설쳤다. 주사가 따끔하긴 해도, 불면증이 있는 나에게는 수면내시경이 나름 부러운 아이템이다. 어떻게 주사가 들어가고 1분도 안되어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이번 건강 검진에는 머리 ct와 상체 위주에 초음파 검사를 주로 했다. 누가 봐도 피로감이 묻어나는 얼굴에 꼼꼼하게 해 보라고 해서 하긴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난 좀 아프긴 하다. 여러 가지로 말이다. 오히려 어떠한 검사로 내 건강을 걱정하던 의사의 말보다 이번에는 두 가지가 날 놀라게 했다.


  하나는 만으로 난 마흔이 되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몸무게가 내가 경계를 하는 80kg을 살짝 넘었다는 점이다. 2년 전보다 3kg이나 늘었다는 것에 살짝 조바심이 났다.

  오죽하면 간호사가 "체중이 좀 늘었네요. ~"라는 말이 살짝 "돼지세요?" 하고 들리는 거 보면 다시금 뚠뚠이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무척으로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검진 절차에 층을 몇 번 오르고 내리니, 생각보다 일찍 검사가 끝났다. 아마 11월 이후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공복에 허기가 밀려왔다. 물론 그렇다고 뭔가를 꼭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멸치국수를 하나 시켜서 국물을  조금씩 마시다가 면을 후르르 넘겼다.


  맛나다. 역시 죽보다는 깔끔한 멸치국수가 나에게 맞는 검진 후 첫 식사였다. 분명 근력 운동과 체중 감량을 선고받은 것 치고는 너무 솔직한 나의 위장은 체중 증가에 반성은 못 하고 있지만, 서류로 구체적으로 지적받으면 뭔가 변화는 있어야겠지.

  살짝 자주 가는 병원 원장님께 검사 결과지를 보고  잔소리를 들을 걱정을 하니, 나의 위장을 좀 속여서라도 살은 좀 빼야겠다.

  나이가 아무리 바뀌어도 마음속은 그대로인 나도, 늘어가는 나이는 못 속였다. 역시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인생의 엇박자라는 생각에 국수를 맛있게 먹고는 쏟아지는 잠에 기차에서 꿈을 꿨다. 스물에 이리저리 여행하던 그 시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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