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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l 29. 2023

돌잔치 가서 먹방을 찍었다

생에 처음으로 돌잔치를 가보았다

  나에게는 절친 두 명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아마 그 둘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난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런 내 친구 중 한 명은 나머지에게 없는 여러 가지를 갖고 있다.


   첫째로 결혼식을 2014년에 했다. 둘째로는 우리에겐 없는 배우자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자녀까지 작년에 생겼으니 아마도 인생의 성공이라면 그 친구를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닐지. 평범함이라고는 거리가 먼 나와 다른 친구는 부럽게(?) 친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메신저로 돌잔치를 알려왔다. 요즘에는 부모들이 자주 챙기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는 사실 돌잔치를 가본 적이 없다. 보통은 애경사에서 부고를 빼고는 결혼식도 잘 가지 않는 편이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결혼식도 최소한으로 가는데, 돌잔치까지는 참석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친구의 돌잔치는 나에게도 좀 각별했다. 서른이 넘은 시기에 입사를 한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친구의 결혼식을 면접용으로 샀던 정장을 입고 참석했었다. 그랬던 시간을 스킵하듯이 지나고서야 40대 삼촌으로 나름 조카들을 처음 보는 자리였다.형제도 없는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얼마나 크게 되려고 하는지? 7월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그래도 비가 잠잠한 주에 천안을 가기 위해서 기차표를 알아보니, 폭우 피해로 노선이 중단된 상태였다. 물론 나중에 그날은 복구가 되었지만, 결국 차를 타고, 조금은 먼 길을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올라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차가 천안을 도착하기 직전에 막히더니, 일찍 출발한 것 치고는 애가타게 딱 맞는 도착이었다. 

  이런 날씨에도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여러 장소에서 돌잔치를 하는지. 주차장은 붐볐고, 주차요원의 안내로 자투리 공간에 주차하고, 드디어 쌍둥이 아이들을 만났다. 공주님 두 분은 잠이 필요했는지 계속 칭얼거렸고, 부모나 사진사나 모두 난감하게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친구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아이들을 보고는 행사 전에 먹방을 시전 했다. 

  왜 이렇게 빈 접시에는 뭔가를 채우고 싶은지? 빈 그릇을 다시금 빈 그릇으로 만드는 행위가 탐욕스러울 정도로 수북하게 쌓아서 친구와 함께 식사를 했다. 나같이 충동적이고 선택 장애가 있는 사람은 확실히 단일 메뉴 식당이 편하다. 조금씩 고르고 담다 보니 결국 과식을 하게 돼버렸다. 

  아마도 좋아하는 것만 고르는 이런 식사 장소에서는 접시만 보아도 단번에 식성이 나오는 것 같다. 역시나 고기와 면이 주류인데, 과거에 결혼식에 국수를 줬던 것 때문에 행사에는 역시 잔치국수가 빠지면 서운 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대접할 것이 국수만 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평범했지만, 그토록 타인을 축하해 주던 주변이 많았다는 것 같은데 고가의 식권에 초대하는 사람이나 그걸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지는 이 시절은 과거의 순수했던 축하와는 좀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여하튼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는 사회자의 진행으로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요즘은 미리 선물도 준비해서 중간중간 경품을 주는데, 대뜸 여기서 먼 거리에서 오신 지인에게 주는 상에 내가 당첨되었다. 큼직한 박스를 받아 들고, 상장을 받은 듯이 기뻐하자 주변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정말로 장거리상을 받고 기분이 좋았나 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보기에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느꼈을 정도면.



  그리고 돌잔치에서 하이라이트는 역시 돌잡이. 쌍둥이 하나하나 신중하게 탐색하더니, 모두의 바람으로 한 명은 돈을 집었고, 또 한 명은 아빠의 바람처럼 실을 잡았다. 과거에는 확실히 판사봉이나 연필을 들었음 했겠지만, 요즘은 돈이 대세 같다. 모두들 한 입으로 아이의 손을 바라보면서 돈을 외치는 거 보면,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에게는 퍽퍽한 삶이 없길 바라는 인생 선배들의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을지. 


  바쁜 친구들과 짧게 인사를 하고, 난 다시금 비가 내리는 도로를 달려 남원으로 향했다.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친구의 전화가 왔다. 비가 와서 위험했는데, 집에는 잘 도착했는지. 그리고 와줘도 고맙다는 말을 특유의 툭툭 내뱉는 시크함으로 표현하는 통화였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고마웠다. 이렇게 멀리 사는 내가 친구의 돌잔치에 갈 수 있었던 것도, 먹방을 찍고, 장거리상도 받을 수 있었던 그 시작은 어쩌면 너희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이다. 


  그날은 쌍둥이의 생일잔치였다. 아이들이 태어나준 감사한 날이고, 맛있는 것도 먹은 날이고, 상도 받은 날이지만,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해 준 고마운 날이기도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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