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은 날
"치맥"
지금은 좀 익숙한 말다. 외국인들이 보더라도 우리나라 치킨 메뉴는 인상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른바 국뽕이 가득한 유튜버들이 올리는 자랑이 아니더라도 그 메뉴를 다 먹은 적이 없을 정도니까. 치킨은 한국인의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
그런데 내가 어릴 적에 느꼈던 치킨은 삼계탕이나 닭볶음탕. 그게 아니면, 통닭이라는 이름의 호프집에 안주였다. 브랜드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치킨에 접목되면서는 후라이드와 양념치킨은 진화에 끝을 보여주었다. 그런 면에서 난 맵지만, 바삭한 튀김옷에 좀 진심인 듯하다.
치킨을 먹는다면, 교*치킨과 BB*치킨을 즐겨 먹었다. 삼겹살을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흔히 말하는 포장 해서 먹을 음식이 치킨 말고 뭐가 있었을까? 비 오는 날에 혹은 술안주 삼아서 먹을 메뉴로 이만한 것도 없었다.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럽고, 둘이 먹기엔 부족해서 한 마리 반을 시켜서 먹었던 20대 시절에는 흔한 말로 반반의 매력에 빠졌다. 치킨과 맥주. 아니면 소주를 마시면서도 아삭한 치킨 무까지 먹을 때면, 과식을 일으키는 것을 알면서도 손길이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치킨을 잘 먹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알던 치킨이 아닌 것이 영향이었다. 적어도 20대에 치킨은 돈 없는 학생이 먹기에 조금은 여유가 있었고, 양도 많았던 것 같다. 최소한 내가 한 마리는 다 먹지 못하고, 남은 치킨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살을 발라서 혹은 그냥 반찬삼아 먹었던 추억은 사라졌다.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에 치킨은 다양해진 메뉴와 함께 점점 걸음이 빨라진 가격으로 좀처럼 선택하지 어려워졌다. 치킨을 먹을 거면 차라리 삼겹살이었고, 고기가 굽기 귀찮은 날에는 회를 먹는 게 더 나은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한 과거의 나는 덤덤하게 치킨가게를 지나쳤다.
그러다 비가 오는 날에 장작에 기름이 쪽쪽 빠지면서 골고루 구워지는 치킨을 보고 있으니, 가격 생각이나 혼자라는 입장은 잊고, 포장을 해버렸다. 기왕이면 맵게 먹으려고, 붉은 소스에 고추까지 뿌려진 걸로 골랐다. 덕분에 다음날에 화장실을 갈지언정 일단은 먹고 봤다.
메뉴로 봐서는 소주도 좋은데, 요즘은 술을 먹지 않는다. 몸도 그렇지만,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한 날씨에 긴장을 놓지 못하니까. 음료수로 술잔을 채웠다. 역시 맵다. 그렇지만 장작에 오랜 시간을 공들여 구워진 고기는 담백하게 맛이 났다. 매운맛 사이로 육즙이 달달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튀긴 것도 좋지만, 가끔은 구운 치킨도 좋은 것은 아무리 기름진 것이 좋더라도 느끼한 것은 싫어하는 우리들 입맛 때문일까?
먹다 보니 결국 한 마리를 다 먹어버렸다. 내 위가 커진 것일까? 아님 닭이 작아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끄러운 빈 케이스를 보면서 칼로리의 죄책감은 잠시 접어 두련다. 그 정도로 난 오늘 너무 열심히 일했고, 치열하게 살았으니까. 이 정도의 사치는 과한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