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에게는 여유를 보여라

아픈 ‘척’은 그만하기

by 이춘노


배가 고프다.

목이 말라서 시원한 사이다 한 잔 마시면 원이 없겠는데, 금식이다. 사람이 물도 안 마시는 공복 상태가 12시간이 넘어가면 기운이 없어지고, 사소한 것에도 짜증 난다. 그 와중에 대기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3층의 병원 관리 직원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시간이 없으니 대기 시간을 좀 짧게 해 달라는 말 같았다. 아주머니는 곤란한 표정의 직원에게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나는 그 틈에서 배는 고픈데, 귀가 배부르다.


신기하게도 사람은 ‘티’를 내는 것을 즐겨한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툭 던지는 상황에서 주변 분위기가 냉랭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대부분 그 눈치 없는 이른바 ‘티’ 때문이다. 보통은 승진하거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입이 간질거리면서 가까운 사람과 입이 가벼운 사람에게 슬쩍 내 속마음을 흘리는 정도는 애교다. 문제는 내가 힘들고 짜증 나는 일에 대한 ‘티’를 넘어서 ‘척’을 하면 주변이 고달프다. 핸드폰에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공복의 짜증과 검사의 귀찮음을 퍼 날려도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병원 사람에게 묻고 ‘티’를 낸다.

“검사가 언제 끝나나요?”, “공복인데 언제 밥을 먹을 수 있나요?” 등등 실제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벽면에 알림판에 크게 쓰여 있음에도 알면서 묻는다. 그런데 그나마 따분한 ‘티’는 봐줄 만하다. 제일 문제는 아팠을 때이다. 명분이 존재하는 환자가 이른 시간부터 앉아서 막 출근하는 간호사를 붙들고 이것저것 묻는 것을 보통은 65세 이상의 노인들만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런 질문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작은 병원도 그렇지만 대학 병원을 가도 아픈 ‘척’을 내보면 뭔가 확실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날마다 질문을 받는 간호사들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지방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복지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병원과 비슷한 것 같다. 게다가 사람에게 질병이 찾아오듯. 사람에게 삶의 복지는 형태를 달리해서 찾아온다. 그것을 설명해주는 것도 내 일이긴 하지만, 제일 곤란한 상황은 질문을 위한 질문이 아닌 답은 정해진 상태로 묻는 경우가 제일 까다롭다. 노인이라고 아이라고 혹은 다른 조건이라고 해서 짜증이 묻어나는 질문 공세를 하면 아무리 직업이라도 사람이면 모두 마음이 무겁다.

매번 병원을 가면 친절하지만, 힘들다는 뉘앙스에 간호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차라리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데스크에 앉아서 접수하고, 그 번호표에 맞게 들어가고, 처방전과 결제를 동시에 하는 자동화된 가계의 시스템을 떠올린다. 요즘 식당이나 매장에서 종종 보는 무인 접수대가 왜 병원에 없을까? 싶었다. 병원으로서는 고가의 인건비를 줄이는 획기적인 시스템인데도 대부분의 접수는 간호사나 그 병원의 베테랑 몫이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걱정과 불안과 짜증을 달고 온다. 그러한 사람은 ‘척’을 내야 하는데, 기계는 너무 삭막하다. 하소연할 곳이 없는데, 의사라는 권위자에게는 짧은 질문도 조심스럽게 하다 보니 만만한 게 간호사다. 그러한 경험을 나도 일을 하면서 느꼈다. 평소에 오던 수급자분이 암에 걸려서 힘들다고 하면 일단 듣는다. 듣다 보면 사실 근본적 해결이 안 난다. 이미 경제적 지원에 방법은 정해졌고, 그분은 단지 본인의 고통스러운 상항을 하소연하고 싶은 것뿐이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내성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려 한다. 그런데도 사람이기에 ‘척’을 하고 싶은 건 환자만은 아니라는 것은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난 건강검진을 받으며, 궁금하지만 일단 기다린다. 저분들도 나의 침묵이 아마도 고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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