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기다리기 아까운 시간
시골병원만 다니다가 큰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니 ‘돈이 좋다’는 말이 실감 났다. 혼잡한 1층과 다르게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서 설명을 듣고 옷을 갈아입자, 대접받는 느낌에 검사에 기대감도 생겼다. 각종 검사를 위한 이동은 층마다 옮기면서 막히지 않게 완급조절이 되었다. 꼭 내비게이션으로 막힌 도로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검사를 위한 병원 시스템이고, 보통의 병원은 이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세상을 갑과 을의 관계로 설명하는 책들이 많다. 힘을 가진 사람은 갑이고 그 힘에 눈치를 보는 상대를 을이라고 하는데, 병원에서 환자는 과연 어떤 위치 일지. 물론 환자는 돈으로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어쩐지 을에 입장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 상품을 설명할 때는 내가 선택하는 처지라서 예약 땐 친절한 설명을 듣지만, 병원 입장하는 순간 일단 기다린다. 그것도 찰나의 진료 시간을 위해서 보통 100배의 시간을 투자한다.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주사나 맞으러 병원을 들어가면 8시 이전부터 노인분들이 병원 의자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접수하려고 이름을 적은 종이 순번을 보니 이미 두 자릿수는 오래전에 넘어버렸다. 보통 1~2분 사이에 진료 시간을 위해서 개원시간을 맞춰오면 1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행여나 자신의 이름이 불릴까 싶어서 원장실 앞에서 진료 순서를 체크하는 간호사의 입만 보고 있는 사람만 수십 명이다. 가끔은 비슷한 이름으로 호명된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해프닝도 생겼다. 그때의 무안함은 같은 이름에 호명된 것보다도 이름이 다 불리기도 전에 전광석화처럼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잠깐의 정적 때문이다.
솔직히 진료 시간을 더해서 처방전을 받고 계산하는 시간까지 모두 합해서 5분을 넘기지 않는데, 2시간을 기다렸다. 잠깐의 감기몸살로 하루 반나절의 시간을 병원 의자에서 보내고 몸이 좋아진다는 것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나는 그 기억으로 꼭 받아야 하는 병원 처방전이 아닌 경우에는 약국에서 간단하게 시중에 파는 약을 먹거나 진통제를 먹었다. 하루 연가를 내더라도 그냥 약을 먹고 푹 자면 나아질 것 같아서 입사 초기에는 병원은 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병원을 가지 않으면 치료가 안 되는 병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복용하는 약과 비례해서 병원을 가기 위한 시간을 많이 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치료는 빨리 끝나지 않았다. 그것을 기대하고 가는 것은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 더구나 어쩐지 병원에 사람들이 없으면 내 질병 치료가 잘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한 끼를 먹더라도 인터넷에 검색해서 줄을 서는 맛집을 찾아가는데, 나는 한 끼 식사보다 더 중요한 내 몸을 위한 투자 중이었다. 물론 같은 상황은 아님이 틀림없지만, 기다리면서 병원을 관찰하다 보면 그것도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진료 대기 중인 할머니들 대화는 얼마나 병원의 원장을 맹신하고 있는지. 본인의 질병 내용은 모르지만, 꼭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야 하는 당위성은 갖고 있었다. 모든 질병이 병원을 오지 않고, 약을 제때 먹지 않아서 일어난 것처럼 말했다. 시골 할머니들의 대화라고 흘려버리기에는 젊은 나도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너무 기다리다 보면 책도 보게 된다. 아프지만, 책을 보거나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유튜브로 영상을 본다. 그렇지만 이어폰의 한쪽은 꼭 빼고 내가 불릴 호명에 신경이 집중되었다. 특히나 접수할 때 내 앞에 있었던 할머니가 원장실로 들어가면 곧 내 차례가 될 것 같아서 모든 책과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만큼 병원은 집중도 안 되고, 아무리 좋은 편의 시설이 되어있어도 편할 수 없다.
30대의 건강검진은 비싸게 대접받는다. 지갑에 돈도 생기고, 직장에서도 지원해주는 병원 내방이지만, 돈이 좋은 병원에서도 층마다 옮기면서 나는 집중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병원만 오면 여유가 사라지는 것인지. 그 공간의 이질감이 내 혈관을 타고 도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