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가면 우선 접수를 한다
누군가에게 독촉 메일을 받았다.
업무 처리 기한이 늦었다는 항의인가 하고 메일을 열었더니, 홀수년도 직원 중 건강검진을 안 받은 사람들은 꼭 받으라는 최후 통보였다. 총무과 메일도 받았는데, 면사무소 서무 직원도 한 번 재발송하며 큰 소리로 다시 공지했다. 대상자들 모두 벌써 그때냐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11월이라도 검진을 받으려면 당장 병원 예약을 해야 늦지 않는다며 주변에서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물론 건강검진을 매년 공문으로 공람되는 내용이고, 알고 있지만 미루다가 밀린 숙제 해치우는 것처럼 끝내버리는 귀찮은 일이다. 입사 후에 처음 했던 건강검진도 12월에 기본 검사만 하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게다가 올해는 만 35세가 넘어서 검사 항목도 추가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건강검진 유경험자에게 물어서 평이 좋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에 바로 움직이지 않으면, 받은 메일도 뒤로 밀려 까먹었을 것이다. 일단 10월 말일경으로 검사 일정을 잡았다. 자리에 돌아가서 탁상 달력에 빨간 글씨로 ‘검진일’이라 써놓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건강검진을 위해서 예약한 곳은 전주시에 있는 건강검진센터였다. 당시 나는 남원시 산내면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출퇴근 문제로 면사무소 근처에 방을 얻어 지내고 있었다. 주말 행사에 갈 일이 없던 전주를 건강검진 방문을 위해 1시간 30분 동안 운전했다. 공복 상태를 유지하며 밀리지 않고 검진을 받기 위해 8시 전에는 도착해야 했다. 그래도 7시 30분 정도면 이른 시간이다 싶어서 안심했는데,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에 공간이 몇 개 없었다. 건물 1층에 들어서자 사람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직원에 도움을 받아 접수하는 것도 줄을 섰다.
이곳은 질병 치료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그냥 검사만 받기 위해서 방문한 사람들이기에 시간에 대한 촉박함이 얼굴에 묻어났다. 받아쓰기 지도를 받는 심정으로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가며, 인적사항과 설문지를 작성했다. 건강을 위해서 고민을 하는 그것보다는 시험 답안지를 작성하는 고민되는 부분은 없었다. 물론 솔직하게 다 쓰면 검사를 못 받을 수 있는 문항도 있어서 잠시 생각은 했지만, 크게 신경 쓰일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나는 검사를 받기 위해서 12시간 이상을 금식하고 있었다. 금식 말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검사를 위해서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현재의 내 상태와 과거의 이력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질병을 찾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검사를 해야만 알 수 있을지. 다른 방법이 있다면 참 편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2년에 한 번으로 검사를 해서 발견하는 것이 조기 발견이라 한다면, 너무 늦은 것은 의문이 들었다. 검사가 단순하게 피검사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모든 질병이 초기에 발견이 된다면 공복 상태로 새벽부터 달려올 일이 없을 것이다. 건강검진을 위해서 전화로 병원에 예약하듯이, 질병 예약을 받는다면 과연 좋은 일인가 생각해봤다. 편하긴 하겠지만, 누가 질병을 예약하는 미친 짓을 하겠는가. 공복에 부질없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연초부터 전 직원 공람으로 건강검진 안내를 했고,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인식을 과거의 패턴만 봐도 알 수 있는 건강검진을 세상 사는 것이 바빠서 독촉 메일을 받은 나처럼. 인간이기 때문에 질병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건강의 독촉장은 아직 상관없는 나이라서 배가 고프고, 직장에 밀린 업무가 더 걱정됐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