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1997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IMF 이후에 세상은 돈과 물질의 낭만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생과 졸업생들은 안정적 직업 공무원에 올인하고 있었다. 1983년생인 나도 30대 초반까지 취업 준비를 위해서 학원 강의실 자리를 마련했다. 젊은 시절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는 게 서럽다는 생각이 들 틈이 없이, 나를 포함한 무수한 청년들은 미래만 보고 살았다.
품었던 높은 뜻과 다르게, 공부라는 목적이 아니라 명분에 만족을 위하다 보니 자리에 앉으면 배가 고팠다. 아침을 너무 이르게 먹었던 게 문제였을까? 시계만 보다가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바로 우걱우걱 밥을 먹었다. 얼굴만 한 접시 한가득 밥과 반찬을 골고루 담아서 먹다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쇠젓가락을 꽉 깨물었다. 순간 위쪽 앞니가 바싹 한 느낌과 함께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오전 내내 나를 괴롭히던 배고픔도 잊을 만큼 등골이 서늘한 그 순간. 밥알과 반찬들 사이로 혀끝에 느껴진 것은 이물감 가득한 날카로운 앞니 단면이었다. 씹던 음식물 속에 깨진 치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뱉어냈다. 그리고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치과로 달려갔다. 수업도 못 들어가고 앞니가 얼마나 깨졌을까 걱정하며 치과를 가니 멀쩡했던 앞니가 살짝 깨져있었다. 언뜻 보면 그냥 둥근달 같지만, 자세히 보면 보름달이 아닌 달처럼 말이다. 의사는 날카로운 단면을 살짝 다듬고는 치료를 마쳤다. 그렇게 난 10년 넘게 앞니를 유난히 신경 쓰고 살았다.
한두 번 병원을 간 것도 아닌데, 병원 하면 제일 먼저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남을 탓하지도 못하는 온전한 내 실수로 언뜻 보면 아무 티도 안 나는 그 상태가 못내 아쉬웠다. 아마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 것은 이제는 온전한 상태의 보름달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상실에 대한 감정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나 아픈 것에 더욱 민감하다. 그런데 하나둘 잃다 보니 민감함도 무뎌졌다. 난치병 정도의 수준이 아니면 그냥 흘리듯 말을 해버리는 나이가 되었다.
“나 병원 다녀왔어.”
평상시 내 모든 계획과 생각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순간을 너무 건조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상실도 있었다는 부연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잃었다고 말하기에는 내 나이가 부끄럽다. 그러다 40대를 바라보는 남자 사람으로 별로 내보일 것이 없지만,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를 잘 표현하는 글감은 ‘질병’이었다. 그리고 심각한 질병을 앓는 것은 아니지만, 종합병원이라는 별명만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과 직장을 제외하고 제일 많이 갔던 곳이 병원이었다. 이러한 에피소드가 있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써보고 싶었다.
지금은 아프면 안 되는 세상이다. 수많은 거리마다 새로 개업하는 병원이 있고, 거주지 선택에 조건에 지역에 큰 병원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100세 시대지만, 아프면 안 된다. 이 책은 나의 질병 백과사전이며 병원에서 생각을 정리한 것이며, 평범한 사람들이 가는 병원의 문턱부터 어떤 사람은 가야 함에도 선입관과 주변 시선들이 무서워서 가지 못하는 곳, 분명 갔지만 지나쳐버린 병원이라는 장소 이면을 예민한 남자 사람의 삶의 종합검진이다. 아픈 게 무슨 자랑이라고 책까지 쓰냐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아프면 큰일 나는 세상에서 좋은 것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눈치 보이는 요즘이다.
평범하게 쓰고 싶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인생에서 병원이라는 단어를 생략한다면 내 인생의 싱크홀이 생겨 인생 노트를 완성하긴 불가능했다. 인지하지 못하게 다가온 기억들 속에서 질병과 상실, 불안에 40대는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애써 지워버린 생략된 페이지를 복원해서 평범한 40대를 살기 위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