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낳은 문화가 바로 '도시락'이다. 공직 사회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것이 바로 '도시락'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선배들이 식당에서 먹는다는데, 따라가서 먹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현명한 것임은 누구나 알지만, 튀는 것을 할 수 없었던 점심시간에 코로나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각자의 책상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나는 도시락을 싸 오기 싫어서 햇반과 고추참치를 몽땅 사놓고는 오로지 그것만 먹고 몇 년을 버텼다. 사실 독거청년에게 이만한 셀프 메뉴는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코로나가 풀리고, 식당에서 식사가 가능해도 요즘은 테이블에 모여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아마도 작은 시골 면사무소 주변에 식당이 없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그것과 상관없이 어떻게든 먹었던 걸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다 유부남 직원이 도시락에 김밥을 싸 오면, 염치없게 젓가락이 간다. 한두 개 먹다 보니 감질맛 나긴 해도 손수 싸준 김밥은 컵라면을 부르는 맛이다. 한마디로 '사랑의 도시락'의 끝판왕인 것이다.
그런 나에게 손수 만들어준 김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소풍을 가면, 전날에는 김밥 재료를 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부터 김밥을 푸짐하게 싸는 할머니와 어머니. 재료의 속은 집집마다 다르지만, 파는 김밥과 집에서 만든 김밥은 어쩐지 맛이 다르다. 순전히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재료를 몽땅 넣어서 옆구리도 터져도 어느 줄에는 햄이 하나 빠져도 상관없는 사랑의 김밥이니까.
그런 김밥을 먹을 수 있으니, 좋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음에도, 소풍을 가는 것도 아닌 평범한 점심에 김밥을 싸준 사람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또 이런 동글동글한 맛난 메뉴를 만든 누군가에게도 감사하다. 참 헤픈 감사함 같지만, 이 말 밖에는 표현 못하는 나도 하나 남은 꽁다리의 소중함처럼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