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이 좋아서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날씨가 부담스러운 광복절. 나는 오전 피서지를 사무실로 정했다.
최근 10년이라는 시간을 일도 하고, 쉬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다. 일하면서 달려온 시간 동안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이 지냈던 곳은 단연코 사무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왜 있지 않던가? 공부는 잘 못하는데, 참 성실한 학생. 학창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 울타리 밖을 나와서도 난 일찍 출근하고, 손해 보는 행동이라도 개인보다는 팀을 더 생각했었던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요즘 세대에서는 보기 힘든 사람.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상사들이 참 이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지쳐갔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차마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런 어중간한 포지션의 입장에서는 직장에서도 승진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하니까. 10년이 지나도 결국 만년 면서기라는 타이틀은 비단 내 모습만은 아닐 테니까.
사는 낙이 그렇게 사라지고, 슬슬 모든 것을 포기할 무렵 난 면서기로 승진하고, 지리산에서 글을 썼다. 복서원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것저것 도전해서 책도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표현은 만들어진 책이지만, 시중에는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면서기 7년 차.
고양이의 습성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주말이나 휴일에 사무실에 나와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하는 것을 버리지 못했다. 입에 거품이 나오도록 상담하고, 땀에 옷이 절어서 갈아입어야 하는 여러 평일보다 휴일은 차분하게 공문과 문서를 마주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배고프다.
전날에 폭염에 취약계층 선풍기 배부를 하면서 흘렸던 땀에 기운이 빠졌기 때문일까? 역시 먹고 싶던 것을 점심은 먹기 위해서 자체 퇴근을 했다.
내 직장에서 가까운 순창. 그리고 가끔 갔던 수제비 맛집인 <친구네 집>에서 면캉스를 하기 위해 달렸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서 순창읍에 와서는 빈집이었던 공터에 드문드문 마련된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길을 걸었다. 그때 마주한 털이 이쁜 고양이는 더운 날에 왜 돌아다니냐는 핀잔을 눈으로 쏘는 것 같았다.
"나 수제비 먹을 거야. 야옹~"
그렇게 세상 이상한 사람 보듯이 도망간 고양이를 뒤로하고, <친구네 집>에 도착했다.
혼자 오는 사람은 인기 많은 맛집에서 그리 인기는 없다. 그건 나도 알기에 시간은 가장 번잡한 시간대를 피해서 12시 50분에 들어갔다. 그래도 자리가 좀 있어서 혼자 먹기에 좋은 자리에 앉아서 다슬기 수제비와 공깃밥을 주문했다.
하늘처럼 푸른 다슬기 수제비를 국물도 떠먹고, 수제비도 훅 떠서 쫄깃쫄깃 씹었다. 그리고 알이 톡 터지는 다슬기를 씹다가 정갈하게 나온 반찬에 하나씩 맛을 음미하면서 반쯤 먹은 상태에서 난 과감하게 밥을 말았다.
요즘 내가 즐겨하는 탄소화물 첨가. 밀가루와는 다르게 밥 알이 폭 담긴 수제비는 그 단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나가면서 나는 왜 수제비를 좋아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또 올 것임을 알기에 내 습성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세상 살기 싫어도 수제비만 이것저것 먹어도 살기 빠듯했다.
남들은 어딘가에 놀러 가느라 바쁜 15일. 나는 오전에 사무실에서 일하고, 수제비를 먹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보니 휴가를 가는 기분이었다. 비록 2200원 톨비가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오후가 남은 하루. 미소가 올라오는 건 역시 사캉스 때문일까? 비가 오면 수제비가 맛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날씨가 좋아도 수제비가 맛있는 것도 사는 이유처럼 진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