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쌓다 보니, 밥을 살 일이 많이 생겼다. 과거에는 그냥 밥 먹자는 것이 인사말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젊기도 했고, 만날 시간도 사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살아보니 그건 내 착각이었다. 함께 있어도 주머니에 동전처럼 사람은 영원하지 않았다. 간혹은 있는 사람도 잊고 살지 않던가? 확실히 휴직을 하면서 그리고 코로나가 터지고는 알았다. 지인과 밥 먹는 것도 제법 큰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난 감사한 사람들에게 밥 사는 일에는 인색하지 않다. 그렇게 복직 이후에는 진심을 담아서 밥을 먹자고 말을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은 나는 3년 만에 밥을 사게 되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은 얼굴을 자주 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전화를 통해서 업무를 묻고 답하던 동료였다. 사람은 신기하게 급할 땐 엄마를 찾듯이 전화 목소리 너머로 들리는 동료에게 다급하게 묻는다. 일종의 정보 이용료 혹은 감사의 마음으로 밥을 사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결국 만나는 것은 지금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는 건전한 퇴근 식사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울분에 쌓인 업무 이야기가 주로 터져 나왔다.
나는 연한 국물을 선택했지만, 대부분은 매콤한 짬뽕밥을 주문한 것을 보니, 평소에 쌓인 것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썰은 고추를 듬뿍 뿌리고, 후추를 툭툭 넣고는 먹기 시작했다. 하얀 국물이라도 매콤하게 먹고 싶을 때는 있으니까.
살다 보니 국물의 색이 중요하진 않았다. 고통도 단계가 있을 뿐 매콤한 맛이 당긴 시기는 항상 존재했다. 다행히 등뼈국밥이나 면을 골라 먹을 수 있었고, 하얀 국물과 매운 짬뽕도 즐길 수 있었다.
다들 오늘 일들로 맵기 조절을 했지만, 메뉴로 모짜렐라 감자전을 먹을 때는 오늘처럼 모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국밥은 먹을 수 있어도 감자전은 그대들이 있어서 주문할 수 있으니까.
늦은 밤에 수다를 떨면서 3년이 아니라 3개월 후를 기약하며... 한 끼를 이렇게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