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시속 100km

스트레스의 출구는 있을까?

by 이춘노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면서 아침식사를 먹어 본 게 5년 동안 얼마 되지 않는다. 오래된 시골집이라서 독립된 방 구조를 가진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아침은 거르고 출근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다리에 휘감기는 이불도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지만, 문제는 내 방이 너무 덥다. 근처 산에서 소나무로 서까래를 올린 흙집에 시멘트를 바르고, 민속촌에서나 보는 창호지 문을 모기장으로 붙여도 땀이 난다. 달력에는 추석이 코앞이지만, 방 안 온도는 한여름이다. 밤새도록 돌아간 선풍기도 새벽까지 따뜻한 바람이 분다.


그렇게 잠을 쉽게 이루지도 못했지만, 눈 뜬 채로 나는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서 천장을 본다. 머리에선 어제 메모해 둔 민원인의 전화번호가 아른거린다. 아침부터 직접 전화를 해서 한 소리 들어야 할 생각에 정신이 까마득하다. 오늘도 아침을 거른다. 그리고 누워서 주무시는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아침에도 열 받은 차 안은 열기로 후끈해서, 벌써부터 셔츠에 땀이 밴다.


출발 후 10분 정도 달리면, 남원 고속도로 요금소가 보인다. 그쯤 되어서야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한다. 찬바람을 쐬며 고속도로를 25분 정도 달린다. 규정 속도 100km는 되도록 지킨다. 이미 7시에 집을 나선 내가 굳이 과속을 할 것도 아니지만, 차에서 있는 순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출근 시간이 빨라지기에 엑셀을 밟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속절없이 나가는 톨게이트비 1,800원을 원망할 틈도 없이 인월면을 지나서, 15분간 다시 굽은 도로를 이리저리 핸들을 휘저으며 면사무소에 도착한다. 역시나 내가 보안 세팅을 풀고, 사무실을 먼저 들어간다.


보통은 아무도 없는 여유 시간이 40분 정도 있는 편인데, 오늘은 문을 열자마자 민원인이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며 들어온다. 그러면서 지금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느냐는 짜증 섞인 물음을 던진다. 시계를 보니 8시 10분이다. 그리고 두 번째 민원인이 온다. 어제 산업 파트 민원 문제로 화가 나셨는지 문을 열어 넘기는 힘이 장사다. 담당자도 오지 않은 이른 아침 시간에 민원인 두 명은 내가 뽑아준 커피를 마시면서 공무원 험담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다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불친절하다는 둥, 돈이나 많이 받아먹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둥. 그렇게 30분은 떠들다가 신분증도 안 가지고 온 민원인은 서류 발급이 안 되자 담당자에게 30분은 잔소리를 하다 돌아갔고, 산업 파트 민원인도 본인 뜻과는 다른 처리 결과에 큰소리로 욕을 하고 돌아간다.

오늘은 그런 날인 듯하다.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시기 어렵게 욕으로 시작했는데, 나에게도 환경 민원으로 열 받아 오신 분이 있다. 재활용으로 쓰레기를 내놓았는데, 수거를 안 해가서 화가 났다. 내용을 들어보니 재활용이 안 되는 영농폐기물을 성인 남자가 들어갈 정도의 마대에 담아서 열 포대 정도를 길가에 내놓았단다.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나에게 기분이 상했는지. 민원인이 화를 내면서 한마디 한다.


“원래 물건 사면서 처리 비용도 포함되는 거 아닌가요?”


난 순간 너무 당당한 질문에 혹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그건 아닌데, 이제는 타 시군을 이야기하면서 그곳은 처리하는데, 왜 안 하느냐고 묻는다. 정중하게 건의를 하겠다 하고 마무리 지으려는데, 그 뒤로 멧돼지 피해 신고로 화가 난 민원인이 서 있다.

추수 직전 벼가 익는 논에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만들어둔 못된 멧돼지에 대한 분노가 진정되긴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또 전화가 온다. 역시 그 녀석들이 다른 밭에 가서도 난리를 피운 듯하다. 목격담이 바로 앞에서 화가 난 민원인과 정황이 비슷하다.

일단 민원인이 말한 논과 밭으로 출장을 나간다. 대강의 설명을 듣고 내비게이션으로 찾아 도착해보니 나도 화가 난다. 울타리까지 뚫고 들어온 멧돼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다시 들어가서 피해 신청서와 각종 서류를 받고 처리하다 보니, 이번엔 기초수급자 상담이 기다리고 있다.


보통 면사무소를 배경으로 찍은 드라마는 순박한 마을 주민들이 면사무소 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어려운 민원도 형님 동생 하며 잘 넘어가던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물론 아주 그런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일 뿐이다. 귀농 귀촌 주민들이 많은 면에서 민원인을 화나게 했을 때 결국은 시청에 전화를 하고, 인터넷 국민신문고로 신고를 한다. 하지만 행정은 무작정 디지털처럼 원칙적으로 할 수도 없고, 아날로그적 감성으로도 처리해야 하는 애매모호한 경계가 있다.


점심 후에는 더 활기차게 환경과 민방위, 사회복지 업무를 번갈아가며 상담과 업무 처리를 한다. 업무 처리도 연관성이 있으면 효율성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민원이 복잡한 하루 속에서 진지한 상담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퇴근 무렵에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신청서와 검토할 공문으로 칼퇴근은 포기한다.

정말 내가 퇴근하는 8시에는 여름이지만 아직은 깜깜하다. 산이라서 다른 곳 보다 일찍 해가 진다. 출근길을 되짚어가다 보면, 식사할 곳이 마땅히 없다. 그래서 즐겨 먹는 식당이 지리산 휴게소이다. 그렇게 그곳에서 간단하게 라면 정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다시금 돌아간 집에서 부모님은 주무시고 계신다. 열대야가 잠잠해지길 기다리지만, 뜨거운 선풍기 바람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도 잠을 자야 내일이 오기에 억지로 눈을 감는다. 오늘은 참 답답한 하루였다. 시속 100km로 스트레스를 달렸던 하루가 내일은 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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