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다
출근하며 보니 까마귀가 면사무소 국기봉에 앉아 있다. 이른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우는 까마귀 소리도 듣기 거북한데, 오늘은 마을 이장님이 까마귀 욕을 한바탕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를 부리로 쪼아서 망쳐 놓는다며 대책이 있느냐 묻는다.
‘대책?’
까마귀에게 소리쳐서 그러지 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웃고 넘겼다. 아무 대책이 없는 순간에는 그냥 웃었다. 어느 순간 나는 까마귀만 보였다. 그렇게 지리산에 텃새를 만났다. 척박한 지리산 농경지에서 욕먹는 동물이 땅에서는 멧돼지가 있고, 하늘에서는 까마귀가 있다. 피해 신고를 듣고 있으면 마치 길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음식물을 찾아 먹는 것과 같다. 사람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닮은 것 같지만, 귀여움을 장착한 고양이와 까만 까마귀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신기하게도 까마귀는 항상 면사무소 주변에 있다. 특히 흐린 날씨에 으슥한 기운이 감도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무리를 지어 있다. 울음소리도 “까악~” 하면 우렁차다. 게다가 떼 창을 하며 존재감을 뿜어냈다. 까마귀는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무척 크다. 머리부터 꼬리까지가 50cm에 날개를 쭉 펴놓고 있을 때면 38cm 정도 하는 것도 있다는데 잡아서 본 것은 아니라 모르겠지만, 거의 일반 와이드 모니터보다 크다. 그런 까마귀가 단체로 고목나무 위에 앉아 있다. 높다란 산세와 캄캄한 날씨까지 받쳐주면, 공포영화 배경으로는 최고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산에 사는 텃새를 미워할 것은 없다. 무섭긴 해도 검은 빛이 감도는 그 자체만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외심도 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까마귀가 마을에 있는 쓰레기 더미를 자주 망쳐 놓는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까마귀 습성을 듣기는 했지만, 내 생각에는 먹이 때문일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잘 정돈한 쓰레기봉투를 검은 부리로 이곳저곳 쪼아 놓은 것도 모자라 내용물까지 꺼내는 고약한 심보를 부려서 욕을 먹었다.
고구려에서는 국조로 떠 받아들여진 길조가 어쩌다가 사람들 구박을 받는 천덕꾸러기가 되었을지? 일본에서는 길조로 여겨진다는 말이 무색하게 불길한 외모 때문에 까치한테도 밀려서 산까지 쫓겨 올라왔다. 한데 여기서도 망쳐 놓은 쓰레기 더미를 파 해쳐서 욕을 먹는 모습이 조금은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정도 까마귀를 관찰하다 보니, 외모는 멋지다. 까만 깃털과 자태는 자체적으로 빛이 났다. 고양이만큼 귀여운 맛은 없지만, 위엄이 품어 나는 존귀한 새다. 막연한 소문으로 손가락질당한 동물이 지리산에는 많다. 멧돼지도 그렇고 까마귀도 안쓰럽다.
하루는 내가 꿈속에서 까마귀가 되어 지리산을 날고 있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도시의 빌딩 유리가 반짝이는 것에도 기분이 좋아 하늘을 날아다녔다. 까마귀도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한다는데, 같은 취미를 가진 녀석을 욕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은 민원인과 맞장구치진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