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직업 선택 이유는?
어른들은 공부할 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란 말을 자주 한다. 아마도 인생의 걱정 없던 꿀 같은 시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인 듯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졸업 직전도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별다른 사고도 치지 않고 착하게 학교에 다녔다. 성적이 좋았느냐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책만 좋아하던 자칭 문학 소년은 소설책과 역사책에 빠져서 공부는 등한시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은 인근 대학에 가서 4년을 채우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어차피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것도 아니니까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대학교 원서를 제출할 때 능력과는 별개로 집안 사정도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립대학교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하셨던 부모님은 어느 날 밤, 나를 불러 우리 집 상황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건 아직 미성년자인 나에게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결국, 생각하지도 않았던 대학과 학과로 진로를 정했다. 아마도 행정학이라는 전공을 배우면서 진로는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된다. 막연한 꿈도 없었던 나는 대학부터 전공까지 점수와 돈에 맞추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IMF 세대라는 분위기에서는 공시생은 절대로 취업 준비생에게 이상한 선택도 아니었고, 대학교 도서관에서는 문과나 이과를 불문하고 전공 서적 대신 공무원 시험 서적으로 씨름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지방대학교에서 공무원 합격은 플래카드를 걸고 홍보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인문대나 사범대나 공대나 농대나 법대나 사기업 취업보다는 공무원 합격생을 자랑스럽게 이름과 학과와 학번까지 올렸다. 문제는 언제 시작하고, 언제 합격하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군대를 의무경찰로 복무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사법과 관련된 내용을 접하고, 관심을 두게 되었다. 모호한 행정학의 이론과 다르게 법과 판례가 구체적인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법기관의 묘한 권위가 맘에 들었다. 의경 복무를 하다가 우연히 검찰청을 간 적이 있었는데, 기관을 들어섰을 때의 그 분위기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검찰청 바로 옆의 법원은 검찰청과 경찰서에서 느끼지 못하는 중립적 분위기로 막연하게 근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당시 나에게는 기왕에 볼 시험이라면 9급 중에서 젤 어려운 법원직을 도전해보자는 생각하고 있었다.
제대 후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많은 기대를 받았다. 2학년부터는 장학금을 위해서 노력했고, 전공은 아니지만, 법학 서적을 펴보면서 마치 시험만 보면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로 매일 꿈같은 미래로 취해 있었다. 그렇게 남들처럼 도서관에서는 공무원 서적을 보고 인터넷으로 관련 카페 가입을 하면서 이미 법원직에 합격한 것처럼 대학 생활을 보냈다. 마치 모든 것은 결정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나의 직업의 선택 이유는 모호하면서 단순하게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