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서기 보호구역 지정을 위하여

휴직은 어렵다

by 이춘노

막상 휴직을 고민하면서 생각할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미 주변 눈치는 무의미하다. 누가 걱정하듯 챙겨주는 말 따위는 흘려버린다. 지금도 힘드냐는 물음을 많이 듣는다. 질문 이후에는 면으로 가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다. 그리고 이곳은 직장생활이기에 혼자만을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도 한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갈까? 원칙과 순리대로 돌아갈 세상이었다면, 누군가가 분노하거나 신규 직원들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순리보단 억지와 비상식으로 돌아가는 것도 세상이란 것을 알았을 때 어른이 된다. 그렇기에 나에 대한 걱정과 비난이 같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마음은 가볍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기회비용이다.

6개월의 휴직을 위해서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월급의 셈법과는 다르다. 그 시간을 쉬면서 내가 잃는 것 이상으로 뭔가 얻어야 하는 이점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감정의 회복까지도 돈으로 나타낼 순 없지만, 그래도 생각해야 했다.

휴직을 하면, 자동차로 두 곳을 가고 싶었다. 하나는 강릉이고, 다른 한 곳은 제주도였다. 입사 전에 혼자 기차를 타고 강릉 여행을 하면서 경포대 해수욕장을 내 차로 한번 달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차를 몰고, 강원도의 험한 길을 달리다가 초당두부로 만든 순두부찌개를 한 그릇 먹고 나면 기운이 날 것 같았다.

또 한 곳인 제주도는 친구가 내려가 있었다. 게임 업체를 다니는 친구가 방 두 개짜리를 구해서 지내는 곳이니 한 달 정도 신세를 지고, 차를 타고 제주도 일주나 한라산 등반, 아니면 아예 차를 여객선에 싣고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자는 생각을 했다.


매력적인 휴직 계획은 단순하고 활기차 보였다. 상상만으로도 내가 지금 있는 면사무소에서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달랐다. 다이어트도 계획했다. 입사 전에는 74kg이었지만, 어느새 90kg까지 늘어버린 체중은 나의 무기력증에 한몫했다. 이렇게 여행과 다이어트라는 달성 가능한 목표라면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으로도 가능했다. 그러면 민원인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이나 내 우울증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름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다른 사람의 눈치가 아니라, 잃어버린 돈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우려도 아녔다. 정말로 내가 60세까지 이어갈 내 직장에 대한 확신과 나를 돌아볼 시간이 있었냐는 자신의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 지금의 자리에 있기 전에 이것을 선택한 이유나 동기나 행동이 있었기에 현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순간 잊혔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며 휴직을 생각하고, 더불어 직장에 대한 회의감으로 그만두고 싶어 하는가를 절실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일복은 없지만, 인복은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휴직을 하겠다 하자 옆자리 직원들이 업무를 덜어 줬다. 쉽지 않은 그 결정에 놀랐다. 그냥 휴직하고 멀리 떠나려고 마음먹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업무가 떨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이미 단순한 업무 투정이 아닌지도 몰랐다. 잘 못 하고 잘하고 가 아닌 왜 이 일을 하고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상담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상담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의 사회복지 시작은 어떠했나요?”


그리고 지금부터 그 답을 이어 가려고 한다….

내키지 않지만, 과거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난 오늘부터 보호구역을 설정했다. 무심코 달리지 말고, 조심해서 나를 지켜봐 주길 바란다. 여기부터는 면서기 보호구역이다.


* 이 글은 2019년에 쓴 글입니다. 2020년의 새로운 이야기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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