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폭우가 내린 어느 날.
과거 임금님은 나라에 기근이 들고 천재지변으로 나라가 뒤숭숭하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물며 과학적 혁신을 이룬 조선에 세종대왕도 그랬고,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지금도 그런 풍습은 여전하다. 그만큼 인간이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인가 보다. 밤사이에 내린 폭우에 하천이 범람하고, 집이 침수되고,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오전에는 하늘이 맑아서 물놀이하기 좋은 날씨였지만, 오후에 비가 쏟아져서 순식간에 하천이 시커먼 흙탕물로 변해 물놀이하던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을 한 달 사이에도 여러 번 봤다. 누구나 날씨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공무원만큼 신경 쓰는 직업은 없는 것 같다. 특히나 산과 바다가 있는 지역에 면사무소 직원들은 더욱 민감하다.
8월의 어느 날. 폭우가 쏟아졌다. 날씨가 급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에 따라 피서지는 각종 위험이 도사렸다. 세상에 생명과 안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우선순위는 안전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시청의 지시에 따라서 담당 지역에 대한 도로 통제를 실시했다. 앞에서 면사무소까지의 여정을 설명했지만, 그건 지금 가야 하는 정령치 입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잦은 폭우로 인해 산의 지반이 무르게 되면, 바위의 낙석과 나뭇가지, 돌멩이들이 도로를 점령했다. 분명 해가 뜨고 있으나, 심상치 않은 바람을 따라 들어간 길을 건장한 남자 직원 넷이 출동한다. 폭우가 심해지면 통제를 위한 장비를 설치하지 못하니, 비가 소강상태일 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다. 대수롭지 않은 날씨를 가지고 유난을 떤다며 그 길을 다니는 관광객들에게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밤새도록 비가 왔다. 바람은 우산을 펴지 못할 정도로 불었다. 조마조마하게 밤까지 비상대기를 하면서 피해 신고 접수를 받았다. 특히나 이럴 땐 산업계 직원들 표정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안전 상태가 확인되어도 그다음으로 농작물에 대한 피해 신고가 얼마나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포클레인 한 대가 상시 대기를 하면서 비를 뚫고 피해 지역을 복구했다. 그런 피해 지역에는 공무원도 나가서 현장 확인을 하는데, 불어오는 비바람을 맞다 보면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신규 직원이 우비에 장화를 신고 왔는데, 공직생활을 하신 아버지 조언으로 차 트렁크에 넣어 왔다. 처음에는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했지만, 다 젖어버린 신발과 옷을 보고서 경험이란 무시를 못 한다고 생각했다. 잔뜩 걱정을 하고, 뉴스와 인터넷으로 특보 상황을 보면서도 우리 지역은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침이 왔다.
해가 뜨고, 바람은 잠잠하다. 밑바닥까지 보이던 계곡은 시꺼먼 흙탕물이 한 뼘만 넘어서면 도로까지 올 기세다. 쓰러진 나무와 각종 쓰레기들이 빠른 물살과 소용돌이 속에서 마구 움직였다. 저 기세라면 다리도 무너트릴 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그 이상은 넘치지 않았다. 비바람이 그치면 당장 도로 통제 구역을 풀어야 해서 일찍부터 면사무소 운전 에이스 직원과 함께 정령치로 갔다.
가는 동안 사람 팔뚝만 한 나뭇가지들이 도로 여기저기 널려있다. 자잘한 가지들은 두고 통행에 방해가 될 것만 치우면서 올라갔다. 접근 금지 라인이 있는 정령치의 입구까지 가니, 차만 한 돌덩이가 떡하니 한 개 차도를 막았다. 옆에는 사람만 한 돌과 브라운 티브이만 한 돌이 있었다. 제일 작은 돌만 옮기면 차도 하나가 통행이 가능할 것 같아서 무리해서 들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던 낙석이 무거워 이내 손가락이 바닥에 찢겼다. 이럴 때는 장갑도 끼고 겸손하게 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의욕이 앞섰던 거 같다. 돌아와서 보건지소 팀장님께 한소리 듣고는 치료를 받았다. 진피까지 상처가 생겨서 한동안 쓰라리고 흉터도 남았지만, 더 큰 상처가 안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치료를 받고 돌아오니 전화기가 불이 났다. 각종 피해 신고로 산업계 직원들은 출장 갔다 들어오기 무섭게 다시 나갔다. 나도 담당 마을에 피해 신고를 받았다. 그래도 요란스러운 폭우에 재산 피해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 인명 피해는 나 하나에 그쳐 다행이었다.
잠들기 전에 날씨예보를 본다. 내일은 해가 뜨고 날씨가 좋다 한다. 한바탕 쓸려나간 계곡물이 맑아지면,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면서기는 그저 평범한 게 최고라며 맑은 날씨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