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마인드에 관하여
면사무소 앞 마트를 가니, 그곳에 친절한 미소를 가진 여자 사장님이 묻는다.
“주사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쓰레기봉투 구매 때문에 오신 분이기에 인사하고, 자기소개를 한다. 나는 승진을 해서 시청에서 나왔고, 시내에 사는 토박이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내가 사회복지 업무 담당자라 말하니, 무슨 놀라운 사실을 들은 것 마냥 표정이 변한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내가 환경직이라 생각했다. 물론 사회복지 업무를 보고 있지만, 환경 업무가 주민들에게는 더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입사를 하면서 나는 사회복지직은 복지 업무만 하는 줄 알았다. 전문적인 기술의 습득과 상담은 꼭 전문가가 해야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시청에서 근무를 하는 선배들을 보더라도, 첫 발령지인 주민센터에서도 복지에 대한 영역은 복지직의 고유 업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에 발령을 받고서, 덜컥 겁이 났다. 세상 어려운 것이 복지 업무라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 업무를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그 일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서 환경 업무를 진행해보니 ‘상황에 따라 복지보다 더한 게 있구나’ 싶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간혹 선배들은 복지 마인드를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명문화된 설명은 없지만, 요즘 신규들은 복지 마인드가 없다고 푸념한다. 십여 년은 일한 선배는 마트에서 한가득 부식 재료를 가지고 와서, 사무실에서 일일이 나눠 아동들에게 배달했다. 그런데 이제는 카드를 발급해서 전산으로 키보드 입력만 하면 배분이 끝난다. 그보다 오래된 선배님은 좀도리 쌀을 받아서, 되 단위로 쌀을 봉지에 담아서 배달했다 한다. 지금도 쌀은 기부가 들어오고, 부식 같은 물품도 들어온다. 그렇지만 십시일반으로 물품을 모아서, 세세하게 나눠서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금의 복지 마인드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의 복지는 시혜(施惠)적인 업무였다. 일반적인 행정 업무와는 다르게, 자신의 경력에 도움도 안 되는 업무를 자처해서 맡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복지는 다른 의미로 힘든 것은 같다. 과거와 다르게 늘어나는 복지 수요와 예산과 더불어서 업무가 방대해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사회복지의 유명한 정책 구호처럼 시골 면사무소도 복지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른 업무와 이어진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확히는 임신 전부터 죽어서까지 이어진 복지 정책들은 국민들의 관심과 정부의 홍보로 많이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에서 쏟아내는 설익은 정책과 이슈들은 공문보다 뉴스로 접하는 것이 빠를 만큼 급작스럽다. 40권은 넘을 복지 지침서는 담당자 책상에 가득하다. 하지만 담당자는 부족한 실무집, 무경험, 무교육 등으로 현장 업무 집행에 한계를 느끼게 한다. 대도시는 세분화된 업무를 나눠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작은 도시의 면사무소는 아직도 한두 명이 근무를 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복지 수요를 처리한다. 그럼에도 다행히 5년 차 공무원에게 복지는 이제는 해볼 만한 것으로 착각하게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담당자에게 지식 테스트를 하는 민원인을 상대로 전문가다운 위엄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복지에 굵은 테마만 해도 노인, 아동, 여성, 수급자, 차상위, 자활, 장애, 이웃 돕기 등 그 해마다 변하는 상황에 따라가기도 어렵다. 결국 인구가 많은 곳에서 더 세분화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환경직으로 불리는 면서기는 복지 업무를 미룬다. 다른 사람들이 복지를 잉여의 업무로 인식하는 것처럼 담당자도 급하게 접수되는 민원이 시급하다. 아무리 고민한들 주변 사람들은 사회복지직이나 환경직이나 공무원은 노는 사람으로 볼뿐이니까. 차라리 나, 복지를 위해서라도 더 큰 지역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인정도 못 받는 사회 복지 전문가란 허명은 선배들이 복지 마인드란 과거의 유물 같다. 결국 사장님에게 쓰레기봉투 판매에 관한 설명만 5분은 하고 그날도 별생각 없이 환경 업무만 충실하게 한다.
* 이 글은 2019년에 쓴 책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