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에 관한 이야기
기차를 타고 용산을 향해 달려가면, 한강철교를 지나기 전에 노량진이 보인다. 달리는 기차 창밖에서 어느 지역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익숙한 건물과 구조물은 쉽게 찾아낸다. 나는 노량진역에서 아이비 건물과 사육신 공원을 보면 뭔가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용산역은 시골 사람들이 찾기 쉽다. 정말 크고 다양한 것들이 몽땅 몰려 있다. 여행자들의 교통 허브이자, 여러 음식점과 쇼핑몰에 영화관과 대형 서점도 있다. 아마도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편의시설이 있다. 하지만 바로 전철로 향한다. 바로 한 정거장만 가면, 노량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정거장을 건네면 강북과 강남을 지난다. 철교를 지나면서 한강을 보면 새삼 한강이 넓다는 것은 느끼지만, 웅장하기보단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물 위에 다리를 짓는 것이 얼마나 고도의 건축술인지 알기에 감탄하지만, 그 위를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다리를 건널까? 그 시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꼈다. 마음 편하게 강을 넘는 사람은 없다. 무거운 철근으로 깔아 둔 레일은 사람의 감정을 억눌러야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둔탁한 전철 굴러가는 소리로 말이다.
노량진역을 내리면, 수산시장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 많은 리모델링을 거친 역사겠지만, 수산시장 너머로 풍기는 바다 향기는 도시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강남이지만 바다 냄새가 난다. 게다가 노량진역을 나서면 젊은이들의 공부 땀내가 풍기는 지역은 도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은 철거하고 없지만, 노량진역을 나서면 수산시장을 가는 통로와 경찰서 쪽으로 이어진 곳이 있었다. 그 갈림길은 공부하러 가는 사람들과 회 맛을 보려고 온 관광객으로 방문자들의 목적이 뚜렷하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 손에 단어장이라도 들고 있으면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좁은 길을 지나며 사람들 틈바구니에 전단을 나눠주는 아주머니를 거치면 이미 광고지로 한 손 가득하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인데 공부가 될까 싶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학원이 있고, 곳곳에서 수험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개미굴에 들어가는 미로처럼 세세한 길목은 나름대로 쓰임이 있을 것이다.
오늘 나와 친구는 수산시장의 횟감과 소주를 위해서 수험생들과 다른 길을 잡는다. 좁은 길을 따라 새로 지어진 수산시장에 들어간다. 이리저리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을 피해서 실한 횟감을 찜하고, 위층의 식당으로 올라가 친구와 자리를 잡는다.
친구는 게임 개발 회사에 다닌다. 게임을 잘 안 하는 사람도 회사 이름을 듣고, 대충은 아는 회사이다. 한때 서울 신림동에서 원룸 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노량진으로 와서 밥을 사줬던 고마운 친구. 낮부터 그렇게 남자 둘은 두툼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병, 돈벌이에서 생기는 스트레스에 또 한 병, 얼큰한 매운탕에 라면 사리 하나 넣어 또 한 병 마신다….
사실 노량진 생활을 하면서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취업을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생활비는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여기 있는 취업 준비생들은 기본적으로 생산보단 소비만 하는 집단이다. 아껴 쓸 수는 있지만, 돈이 나오는 곳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급할 때마다 구원투수가 되어준 친구가 있었기에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노량진에서 지낼 수 있었다.
노량진에 있으면서 항상 생각했다. 노량진에서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소크라테스라고 말이다. 직렬을 통틀어서 순수하게 취업이라는 갈증을 해결하려고,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주민등록증이 나온 이른바 성인 중에서도 대학생이라는 타이틀도 있는 사람이 대다수인 노량진은 축복받은 곳이라고 말이다.
나는 오로지 취업을 위해서 상경했다. 그것도 꿈이었으며, 열정으로 미친 듯이 공부를 하던 순간은 2~3년간 학원 수업을 수강했던 때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내 친구는 항상 묻는다.
“할 만해?”
그 한마디에 친구의 걱정과 내가 추구하던 공무원과 현실 삶의 괴리감을 고민하는 한 인간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한꺼번에 듣는다. 하지만 나는 답하지 못한다. 불확실한 수입과 아직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어정쩡한 도전은 친구에게 대답을 못 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지금 나는 무기력하게 술만 마실 뿐이다.
* 이 글은 2019년에 쓴 책에 내용을 옮겨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