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가끔 휴식을 먹는다
대도시는 미세혈관 속 적혈구처럼 길과 길 사이로 쉼 없이 사람이 다닌다. 어딜 가든 사람이 있지만, 가끔 휴식이 필요할 때 도심의 허파 같은 곳도 필요하다. 아마 그곳이 노량진에서는 사육신 공원이 아닐까 싶다. 한국사 시간에 조선 시대 단종과 세조에 관한 역사를 배우면서 사육신이라는 단어엔 기계적으로 밑줄을 긋는다. 딱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충의와 충절은 빠지지 않는 이야기다.
우선 노량진에 사육신 공원이 있다는 것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좁고 삭막한 공간에서 우거진 나무와 쉼터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지만, 위치도 역과 역 사이다.
친구와 술을 한 잔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사육신 공원으로 갔다. 수양대군 천하에서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잃은 충신들을 위한 공간. 나는 그곳을 살짝 지나서 맞은편에 있는 사색의 공간을 찾는다. 그곳에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렇게 한 턱 높은 나무 울타리를 지지대 삼아 더 높게 여의도와 용산역으로 향하는 한강철교를 바라본다.
나는 해가 저물면 63 빌딩에 비치는 석양을 보면서 나름의 미래를 꿈꾸었다. 아니면 로또 한 장을 구매하고 친구와 존재하지도 않는 당첨금을 나누는 상상을 하거나, 공무원 합격 4년 후의 모습을 그려봤다. 일단은 머릿속에선 결혼을 했다. 지방에 좋은 쓸 만한 평수의 아파트에 준중형 자동차를 사서 주말에는 아내와 여행도 하는 누구나 꿈꾸는 30대 중반을 이야기했다.
5년이 지나도 그곳을 지키는 무덤의 주인들은 그대로고, 63 빌딩도 그대로 서있으며, 한강도 변함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게다가 나도 친구도 그대로다. 오히려 복잡해진 머릿속은 영화처럼 재단된 과거의 기억들을 추억하고, 그립고 , 외롭고,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는 나이만 먹고 만다. 확률에 기댄 꿈만 꾸는 30대 초반의 나는 사육신 공원에서 청춘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