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버는 이유
노량진 생활에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만, 주된 생활비는 내가 직접 벌어야 했다. 그래서 노량진에 올라와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경험도 없던 내가 그나마 사이트를 통해서 바로 구 할 수 있었던 일자리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였다. 서울 반포에 있는 주택가 편의점에 가서 간단한 면접을 보고, 그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저녁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이어진 첫 아르바이트에서는 실수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바코드를 찍고 거스름돈을 주는 것이라도 세상은 그렇게 비효율적인 상황을 용납하지 않았다. 손님이 오지 않는 시간에는 청소와 물건 정리를 해야 했기에 밤새도록 서 있다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그나마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교대 자가 올 때까지 출근하는 손님들에게 이런저런 물건을 팔면서 졸린 눈을 비비고 시계를 봤다. 남들은 출근할 때 나는 9호선 전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퇴근을 했다. 그렇게 저녁 같은 아침을 먹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으로 매달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했다. 식사는 대부분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손님에게 팔 수 없는 음식으로 해결했다. 돈과 시간을 아껴서 좋기는 했지만, 그에 반해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게다가 밤낮이 바뀌다 보니 생활 리듬이 깨져 쉽게 피로해졌다. 잠시 그렇게 반포를 왔다 갔다 하다가 사당역 근처 편의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 사장님은 반포에서 같이 일을 했던 매장 매니저였다. 그러다 창업을 하면서 나를 부른 것인데, 나보다 두 살 위에 청년 창업자였다. 그 당시에는 편의점을 많이 오픈했다. 같은 브랜드만 아니라면 100m 간격에도 다른 편의점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영업하던 정글이었다. 다만 소규모 자금으로 손쉽게 사장님이 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청년과 퇴직자들이 몰렸다.
30대의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은 사당역 인근 편의점에서 오래도록 일을 했다. 구체적인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자본은 참으로 냉정했다. 투자한 금액과 조건에 따라 본사와의 계약 조건은 달랐고, 매출에서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고용주와 고용인은 사실 버는 돈에서 별 차이가 없어졌다. 결국, 인건비 절약이 고용주의 편의점 수입에서 유일한 초과 수당인 것이었다. 일한 만큼 벌어가는 고용인은 그 돈으로 생활하기 퍽퍽했고, 어떻게든 수입을 늘려야 하는 고용주는 더 일해서 돈을 벌었다. 뭔가 사장님이란 단어에 혼동을 일으키던 상황이었다. 아마도 당시에 취업이라는 것은 공무원을 위해서 시간을 버리거나 자본에 기가 빨리는 청년 창업자뿐. 애초에 젊은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88만 원 세대였던 나는 그 돈을 벌어야 한 달 생활이 가능했다. 같이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의 월급은 비슷했지만, 그 돈에 대한 쓰임은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20대 초반 남자는 여자 친구의 선물을 위해서, 20대 여대생은 학비를 벌기 위해서 일을 했다. 나는 나이도 많으면서 단순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밤낮을 바꿔서 생활하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단순한 도피나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닌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다시 법원직 시험을 준비할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뭔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묵묵히 생활비를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