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바뀌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름이 바뀌면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다. 물론 내용물이 작아진 질소 과자 같은 것이 아니라면,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뭔가 좋아지기 위해 명칭을 바꿨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우리 동네 행정복지센터를 동사무소라 불렀다. 동사무소에서 주민센터(이후 주민센터로 통일해서 쓴다)로 바뀐 것도 생소한데, 아무리 간판이 바뀌어도 나는 동사무소라 말하는 게 편했다. 그렇게 한 번 각인된 명칭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처음 정식으로 출근을 하고, 제일 헛갈리는 것은 명칭의 문제였다. 가뜩이나 신규 직원이 알아야 할 것은 많은데, 기초연금을 가지고 본의 아닌 말씨름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해 가장 큰 이슈는 기초연금이었다. 뉴스에서는 하루에도 같은 뉴스를 여러 번 보도했다. 그렇게 뉴스에서 만 65세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씩 준다는 소식만 듣고, 매일 기초연금 문의 전화가 왔다. 분명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존의‘기초노령연금’과 달라진 ‘기초연금’을 상담하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노인분이 새로운 제도인 기초연금을 신청하겠다는 내용부터, 노령연금을 신청한다면서 내가 기초연금이라 말하면 그게 아니라고 답답한 담당 공무원이라고 화를 내는 민원인까지. 사실 같은 내용의 제도로 ‘같은 통화 다른 이야기’가 제법 많았다. 나름 관련법을 설명하면서 명칭을 정정하려 해도, 어르신은 이해하기 힘드신 것이 당연했다. 자극적인 머리기사로 전해 들은 내용은 본인이 보고 듣고 싶은 내용만 듣고 말했다. 주로 금액만 들렸을 것이다. 기자들이 세세한 내용까지 전달해줄 만큼 친절하지도 않지만, 치열하게 공부하며 외우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편적 이야기로 당당하게 전화를 걸고 문의를 했다.
제일 많이 들었던 항의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어르신께서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반영되고, 본인이 받는 수급비가 그만큼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그분들의 생각은 40만 원에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연금 20만 원을 더하면 60만 원이어야 하지만, 실제는 기초연금이 노인의 소득으로 산정되어서 기초생활수급비 20만 원과 기초연금 20만 원을 더한 40만 원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바로 그분들은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소연하셨다.
그때만큼은 사람들은 정확하게 명칭을 따졌다. 불리할 때는 법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면서 담당자보다 더 전문가가 됐다. 특히나 젊은 자녀들의 항의에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난감한 상담도 많았다. 그리고 법과 지침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다시금 어르신은 감정에 호소했다.
사실 사회복지는 전문적인 것은 맞다. 국가와 사회가 합의로 만든 제도. 과거에는 없던 제도를 만들고 체계화하기엔 다른 분야보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게다가 상담 시 감성적인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기에 사회복지직은 미완의 전문직이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신규 직원으로 전문가도 아니었고, 법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단순하게 국어, 영어, 한국사, 사회복지학, 사회 시험을 보고 들어와 별다른 교육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병아리다. 민원인들이 보기에는 세금 도둑 공무원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순간에 내가 느낀 전문가라는 정의는 억지를 받아 내는 단순한 민원인의 감정 쓰레기통 같았다. 첫날부터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사회복지직 업무를 시작했다. 가장 쉬운 업무라 할 수 있는 기초연금 상담에서부터 말이다.
앞서 말한 기초생활 수급 어르신의 기초연금과 수급비의 딜레마처럼, 나는 나의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이렇듯 나의 딜레마는 돈을 버는 것과 욕을 먹어 가면서 나의 시간을 교환하는 것이 균형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주민센터에 앉아 있었다. 앞으로도 민원인의 질문에 경청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사명감보다는 민원인들에 대한 공포만 생겼던 불편한 시작. 아마도 앞으로의 모습도 시간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보단 그러한 시간을 어김없이 팔고 있는 나약한 직장인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