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 담당자의 하루

해마다 난 노인들을 본다

by 이춘노

주민센터의 아침은 노인 일자리 어르신들의 인사로 시작된다. 공식적인 업무는 9시에 시작하는데도 어르신들은 아침 일찍 담당자가 나올 때까지 주민센터 모퉁이에서 앉아 계시다가 8시부터 나와 계시다가 주민센터의 문을 여는 직원들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두 분 정도 계시다가 잠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밖을 보면 인도 모퉁이에 쭉 앉아 계셨다. 마치 전깃줄에 참새가 앉은 것처럼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주민센터 주변이 주택가라서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가끔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 길모퉁이를 점거한 어르신들 때문에 주차장 공터가 집합장소로 바뀐듯했다. 그늘이 적당하게 있으면서 높지 않은 인도 턱에 앉는 명당을 포기 못 하시는 듯했다. 시간이라도 제때 오시라고 부탁드려도 듣지를 않으셨다. 아침에 눈을 떠서 텃밭에서 밭일까지 하고도 1시간은 더 일찍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담당자의 말은 허공의 메아리다.

여기 오시는 노인 일자리 어르신들은 평균 연령이 72세였다. 봄철부터 겨울 전까지 형광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 바로 노인 일자리 참여자다. 매년 1, 2월이 되면 일자리 공고가 나오기도 전에 문의가 빗발쳤다.(현재는 11월이나 12월에 공고를 한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일자리지만 해마다 이어지는 습관적인 신청과 참여가 반복됐다. 대부분은 신청하신 분들이 또 신청하기 때문에 구성원도 그대로다. 그래도 경쟁률은 2:1 이상을 기록했다. 작년에 함께 일했어도, 일하던 분 중에서는 누군가는 되고 또 누군가는 안 됐다. 나름의 공정한 선발을 위해서 기준표도 마련했지만, 그분들은 일하게 되면 고마운 것이고, 떨어지면 한순간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후 순위 대기 1번이라고 말해도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담당자는 당장 먹고살 것이 없는 어르신을 몰인정하게 떨어트리고, 잘 사는 옆집 할머니는 합격시킨 몹쓸 놈이었다. 퇴근 무렵에 전화를 드렸더니, 통곡하시며 하소연을 했다. 행정적 수사를 아무리 하더라도 그럴 때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매일같이 담당자에게 하소연하면, 다음에는 아들이 전화가 와서 주말에 가보니 어머니가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계신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하는데, 정말 난감했다.

그런 억울하신 어르신 세 분 정도는 해마다 담당자를 힘들게 했다. 3월이면 어르신들의 원망을 들으며 구성원은 거의 같지만 다른 듯 일을 시작했다. 겨우내 묵었던 동네 쓰레기를 치우고, 도로변의 잡풀도 제거하고, 어린 사람이 주차장이나 공터에서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를 노인들이 주웠다.

대부분의 노인 일자리 담당자는 어르신들이 주민센터에 와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실 때까지 조마조마하게 일을 진행하곤 했다. 본인 업무도 있으므로 항시 붙어 다닐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각자 팀도 만들었다. 담당자는 어르신들이 정해진 구역을 돌 수 있도록 고민하고 계획을 세웠다. 걸음이 느린 어르신이 있다면 조금은 책임감이 강한 어르신을 꼭 붙여서 함께 다니게 했다. 그리고 무리하게 일을 하지 말라고 아침마다 신신당부도 했다. 어떠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연말에 식사 간담회를 할 때까지 별 탈이 없길 기원했다.

그래서 아침에 비가 올 것 같으면, 일일이 전화를 해서 주민센터에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다 통화가 안 돼서 나오신 어르신들은 몇 방울 떨어지는 비는 상관없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보통 때는 어르신들 고집에 넘어가도 날씨만큼은 담당자의 고집도 완고했다. 그렇게 몇 달 지나 보면 익숙해지시는지 다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뒷짐 지고 되돌아가셨다.


5~6월에는 면접 때 건강하니 꼭 뽑아 달라고 말씀하시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병원에 입원하고, 중도에 일자리를 포기했다. 간단한 입원이면 몸이 회복하시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기력이 쇠하신 어르신은 본인 고집으로도 마음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몸 때문에 미안하다며 그만두셨다. 그렇게 내년을 기약하면서 내년에는 못다 한 일을 꼭 하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매일 아침 8시부터 오신 분들도 9시에 출석을 부르며 인사를 드리면, 5명 정도로 나눈 조별로 각 구역을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흩어지셨다. 그사이에 나는 일을 하면서도 걱정되었다. ‘도로를 건너시다가 쌩쌩 달리는 차를 못 보시고 사고가 나는 건 아닌지?’,‘ 쓰레기 줍다가 넘어지시면 어떡할지? ’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거 마냥 답답한 마음에 잠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봤다. 순찰하며 점검하다 안 보이시는 어르신은 조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도 골목길에서 쉬고 계셨단다. 그렇게 11시 반이 되면 다들 아침에 모였던 주민센터로 돌아왔다. 일하다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다가도 왁자지껄 어르신들 목소리가 들리면 점심이 왔고,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내일 뵙자고 인사드렸다.

파카를 입고 시작해서 파카를 입고 끝나는 사계절을 지내면 11월에 식사 간담회를 했다. 수고하신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근처 식당을 수소문해서 가격을 맞히고 메뉴도 정했다. 올해는 고민하다가 설렁탕으로 대접했다. 부족하지만 따뜻한 밥 한 끼에도 어르신들은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동장님께서 인사 말씀을 하시고, 담당자인 나는 내년도 건강하게 뵙자고 진심을 말했다. 영영 안 볼 것도 아닌 내 말에 어르신들도 그러자 하셨다. 몇 주 일을 더 하고 한해 노인 일자리는 마무리했다.

다시금 새로운 해가 오고, 노인 일자리 신청을 어김없이 받았다. 그런데 작년에 중도 포기하신 어르신의 이름이 신청자 명단에 없었다. 그리고 사회복지시스템의 사망의심자 알림을 보고 어르신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다음에는 남은 일자리를 이어서 하신다더니, 인사 없이 가신 어르신이 생각나서 올해는 정을 덜 줘야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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