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가 상담을 받다

누구나 상담은 받는다

by 이춘노

인생을 살면서 법원과 경찰서와 병원만 안 가도 성공한 삶이라는 말을 들었다. 남에게 해를 끼치고 해를 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아픈 것도 문제라는 뜻 같다. 다만 지금 병원은 대중화되어서 의료 쇼핑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친숙하다. 아프면 가야 하는 것이 병원이라지만, 아픔에도 눈치가 보인다. 드러낼 병이 있고 숨길 병이 있어서이다. 아마도 정신과는 그중 가장 감추고 싶은 곳이 아닐까?

위험한 생각과 극도로 초조해지는 마음은 발길 닿기 두려운 그곳의 문을 열었다. 병원 대기실은 말도 없는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렸다. 다른 병원보다는 상담이 주된 진료 진행 방식이라서 대기 시간도 길었다. 접수를 하고 앉아 있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와 당장은 아무 변화도 없다는 절망감에 반신반의하면서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실에는 인자한 <슬램덩크> 감독님 같은 외모에 원장님이 계셨다. 분위기 덕분에 차분하게 상담을 진행했다. 말하기 편하지는 않았지만, 극단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내 머릿속을 다 말하고 싶은데, 막상 말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30분이 지나있었다. 일하기 싫은 꾀병으로 보이는 것도 싫지만,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섣불리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첫 상담을 마치고, 약봉지를 받아서 나왔다.


‘나에게 오던 민원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딱히 상담실도 아닌 민원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꺼내면서 본인의 속사정까지 들춰내야 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행동했던 내가 떠올랐다. 약봉지를 건네듯 신청 서류를 들고나가는 마음이 어땠을지. 나는 그렇게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그런 상담을 몇 달 받고 나서야 스스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가난하다는 것은 딱히 숨기지 않고 다녔다. 오히려 가난이 콤플렉스였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려고 돈을 쓰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한 본능적 자기 방어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가난은 숨길 수 있었지만, 몸의 병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숨겨지지 않았다. 즐거운 상황에서도 즐겁지 않았고, 배가 고픈 시간에도 식욕이 없었다. 물론 대화도 줄어서 업무적 이외의 대화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딱 봐도 우울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우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두운 낯으로 일했기에 사람들이 조심했을 것이다.

무거운 업무가 떼어진 상황에서도 야근을 했다. 때마침 추석이 다가와서 명절 이웃돕기 진행 중이었고, 그 자체로 야근을 하면서 사무실을 지켰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야근하면서도 내 업무 때문에 힘들어하는 다른 동료를 보는 것이었다. 주변의 묘한 시선과 뭐라 말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묵묵히 일만 하는 순간에도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을 짐작한 동기들이 찾아왔다. 같은 시간 야근을 하는 4층 원탑과 찍찍이는 어깨를 툭툭 치고 도망갔다. 평균 나이 33세에 우리 동기들은 남학교 중학생같이 장난치고 또 함께 놀았다. 큰형이 사온 아메리카노 때문은 아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다가 문득 상담사가 상담을 받는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왜 이토록 힘든가를 머리와 마음으로는 어떻게 설명이 안 되는데, 과연 슬램덩크 감독님은 알고 계신지를 다음에 상담 때는 묻겠다고 기억하다 잠을 잤다. 불안이 엄습해 오면 나도 모르게 슬램덩크 감독님의 말을 생각했다.


“일이 힘든 것이 본인 탓은 아닙니다.”

‘정말 내 탓이, 나약한 내 탓이, 능력이 없는 내 탓은 아닐까?’라는 물음에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심리적인 어떠한 효과라고 명명할지는 모르겠다. 설령 그것이 거짓말이라 해도 그 말은 하루를 버틸 힘을 주었다. 아마 이 말을 주변에서 해주었다면, 달랐을 것 같다는 망상에 매일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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