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 원 세대의 나와 그분은 다를까?
뉴스에서 공무원 초봉이 최저임금 기준으로 보면 낮다고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생각보다 많이 받았다며 뿌듯해했다. 아마도 과거에 취업 준비를 위해 주 5일 편의점 야간아르바이트로 88만 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궁해서 주말도 없이 일하면 100만 원 좀 넘는 돈을 만질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유지였다. 참으로 부족한 삶에서 나는 타인보다 나를 위해서 공부했고, 합격해서 복지 담당자로 근무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거의 열악한 생활의 습관 때문이었다.
88만 원 시절의 생활이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일하던 서울 사당역에서 낙성대 사이에 있는 대로변 편의점은 새벽 1시가 되면 손수레도 없이 폐지와 알루미늄 캔을 줍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사람이 50대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왜소한 체격에 힘도 없어 보이는 분이 어눌한 말투로 장애도 있었다. 그분은 인근의 폐지와 캔을 수거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여름의 계절이 한번 또 돌아올 때쯤. 자주 보는 그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날은 열대야로 새벽에도 시원한 맥주가 무척 잘 나가던 때였다. 목이 마르실 거 같아 물 한잔을 드렸다. 한 컵 급하게 마시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한 잔 더 부탁했다. 생수는 아르바이트생도 본인 돈으로 사 먹긴 해도 1,000원도 안 하는 생수라 두어 잔 연거푸 드리자 말문을 열었다.
1,000원이 없어서 창문도 없는 골방에 있다가 재활용품을 수거하러 돌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낮보다는 밤이 벌이가 좋다면서 말이다. 당시에는 사회복지와는 관련도 없던 시절이라서 저런 분도 있으니 나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견뎠다.
그리고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었다. 복지 업무에 다양한 민원인들 틈에서 어엿한 공무원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며, 민원인의 욕을 먹으며 일을 하는 나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람임을 자각하며 하루하루 버텼다.
나에게는 자동차 할부가 36개월 남아 있다. 적금도 들고, 보험도 들다 보니 다달이 빠져나가는 돈도 무시 못 했다. 그야말로 88만 원으로 생활하던 시절이 무색하게 번 만큼 지출은 늘어났다. 각종 카드 대금과 자동이체로 통장에 돈을 당당하게 퍼갔다. 그만큼 생활이 목적인 사람에게 돈은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회복지 업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복지 대상자 때문에 경악과 고민을 동시에 만든 사건이 생겼다. 위기 가구 방문을 위해서 짝꿍 누나와 가정 방문을 했는데, 구도심의 골목 지금은 문을 닫은 2층 음식점에 사람이 살았다. 불이 꺼진 계단을 오르다가 독수리 박제가 있어 깜짝 놀랐다. 어둑한 계단을 조심히 올라가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문 닫은 가게 가운데 스티로폼으로 된 움막을 만났다. 미닫이처럼 만든 스티로폼 문을 열자 기름 난로와 봄철에도 두꺼운 이불과 전기장판으로 딱 그 공간만 영유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각종 반찬 배달통과 햇반, 라면으로 냄새는 뒤섞였다. 역한 냄새가 나는데, 그 광경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와 짝꿍은 주거 개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임대 아파트도 알아봤다. 신청서도 챙겨가서 겨울이 오기 전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설득했지만, 어르신은 이곳을 떠나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수긍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내 이사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선 강하게 거절해서 상황은 제자리였다.
여름이 되자 짝꿍 누나와 돈을 모아 선풍기도 사드렸다. 나도 창문 없는 방에서 여름은 지내고 있었지만, 창문도 없는 건물 내부와는 비할 것이 아니었다. 선풍기를 드리면서 걱정이 되어서 거의 일주일에 3번은 찾아가고, 가지 않은 날은 전화했다.
걱정스러운 여름이 지나자 겨울이 왔다. 전기장판이 화재 위험도 있다는 생각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도움으로 온수 매트도 직접 깔아드렸다. 겨울에도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누군가를 걱정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공무원이 아닌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월급의 무게를 느꼈다. 잘난 사람만 보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나보다도 힘든 사람을 보며 위안으로 삼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란 것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솔직히 욕을 하는 민원인보다 그러한 복지 대상자는 업무를 떠나서 개인적인 감정이 더 남아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든든한 짝꿍이 있고, 많지 않은 사례의 고민거리는 금세 잊고 살았다. 생각보다 당장 카드 할부금을 걱정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매일 찾아뵙는 어르신은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셨는지는 궁금했지만, 답을 주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