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지직 공무원을 하게 된 이유
우리가 기억하는 처음은 항상 강렬하다. 사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말하는 것은 사람들 머릿속 편집에서 오는 기억의 예리한 조각이다. 떠올려보면 사회복지를 접하면서 대학 교양과목으로 수업을 들었고,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부모님께도 흘리는 이야기로 몇 번 듣고 접했다. 하지만 그렇게 접했던 사회복지를 구체적으로 인식했던 처음은 어머니께 전화를 받았던 때였다.
수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11월은 보통 본격적인 내년도 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 수강을 했다. 학원에서는 보통 4월부터 내년도 공무원 시험 준비했다. 그런 세부적인 수업 진행은 별개로 하더라도 시험 4개월 전부터는 몰아치듯 수업을 진행해서 노량진에서는 수강 신청을 위해 끝도 보이지 않는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나도 당연하게 그 줄을 섰다. 그리고 노량진 무료 개방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급하게 내려와야 한다고 말이다. 부랴부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향을 향했다. 그러다 그 중간에 예수병원으로 옮긴다는 말을 듣고 가던 버스를 정안 휴게소에서 갈아타고 전주로 갔다. 마음이 급해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넘어졌다. 무릎에서 피가 났지만, 그게 대수가 아녔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고서부터 보호자라서 무작정 기다렸다. 중환자실 보호자는 따로 대기실이 있었는데, 한겨울의 시작이라서 전기장판이 바닥에 깔린 것 말고는 군대 내무실과 비슷했다. 식사 무렵에 허용되는 면회를 위해서 한 달 넘게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지냈다.
그러나 대기실에서의 기다림보다 더 큰 걱정은 병원비였다. 부모님이 병원비 문제로 힘들어서 해서 무슨 서류를 준비했던 것 같긴 했는데, 아마도 차상위 본인 부담 경감 대상자였다. 그것으로 병원비를 감경받더라도 내야 할 병원비는 몇백만 원을 넘었다. 환자를 위한 병간호비도 적지 않은데, 병원비가 더 걱정이었다. 그때 알게 된 ‘긴급의료비 지원’ 신청으로 아마도 처음으로 사회복지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사회복지에 대해 좋은 인식하게 됐다. 그렇게 문득 사회복지가 하고 싶어 져서 알아본 자격 조건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그냥 복지관에서 일하면 되겠지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자격증이 필요했고, 그 자격증도 학사 학위 정도 수준이었다. 그렇게 일단은 자격증을 취득해보자는 생각으로 학점은행제 관련 사이버 강의를 10개월간 듣고, 사회복지에 대해 진로를 생각했다.
그런데 실습 장소를 알아보면서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나와 같은 사회복지 비전공자를 받아줄 복지관이 인근에는 없었다. 노량진 부근 사회복지 시설에 전화를 꽤 했지만, 대학 전공자도 교육을 다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거절당했다. 수소문해서 인천에 한 곳을 찾아서 실습을 어렵게 마쳤다. 그 후 진로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는 공무원 시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기존에 하던 공부도 아닌 다른 과목을 변경하면서까지 무리하게 해도 합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야간 아르바이트로 한 달을 간신히 버티는 가운데, 수험공부를 위한 돈을 지출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한 번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친구들이 도움을 주었다. 처음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이제는 취업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과목 책을 사고, 아르바이트하는 틈틈이 책을 보고 이동하면서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2014년 고향의 사회복지직에 합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