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사회복지서기보시보에 임명합니다
무더운 여름, 시청 인사과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잡힌 임용식 일정 때문에 반소매 와이셔츠를 사러 시내를 나갔다. 좀 미리 알았으면, 여름 정장이라도 하나 장만했을 텐데. 다른 것과 비교할 틈도 없이 비가 오는 날씨 탓에 입고 나간 반바지와 운동화는 이미 빗물 범벅이 됐다.
군대 때도 부대장에게 신고하려면 발음부터 내용까지 미친 듯이 연습했고, 칼같이 다려진 군복을 입고 부대장 앞에 섰다. 그 이후 처음으로 어느 조직의 장에게 신고하는 것이다. 서툴게 넥타이를 둘러보고, 새로 산 셔츠를 손수 다렸다. 소나기가 세차게 내린 그날 저녁 심란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정을 넘어서 다음날이 찾아와 버렸다.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침 8시에 도착한 시청 강당에는 의자도 없이 쭉 나열된 보이지 않는 열 번호가 있었다. 인사계 직원들이 출석 여부를 점검했고, 그날 발령장을 받는 직원들 틈 속에서 신규 직원들은 병아리처럼 모여 있었다. 사실 동기들 얼굴을 전체적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9명의 사회복지 신규 직원들은 거의 마지막 열에서 순서대로 서 있었다. 동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곁눈질로 주변을 봤다. 어색함과 혹시나 아는 사람이 있는지를 둘러보는데,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3명 얼굴들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발령받은 곳에 전임자였다. 먼저 인사를 건네며 인사 발표가 난 후 명단에서 내 이름을 보았다면서 무척 반가웠단다.
시장님께 받은 발령장에 쓰여 있던 첫 발령지는 동 주민센터(지금은 명칭이 바뀌었다. 동사무소가 편하지만, 주민센터에서 행정복지센터로 바뀌었다.)였다. 지방사회복지서기보시보로 아직은 수습 딱지 붙은 병아리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9명의 병아리는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서 주민복지과로 인사를 하러 갔다. 사회복지직 직원들이 새로 오면 주민복지과와 여성가족과에 인사를 하러 가는데, 우리 기수에서는 조금 특이한 풍경이 있었다. 9명 중 7명이 남자였다. 일렬로 선 신규 직원들이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면 원래 환호하고 좋아해 주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선배가 되고 보니 그건 우리 기수의 특이한 남녀 성 비율 때문이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이런 구성비는 나오지 않는데, 나중에 선배들에게 왜 그렇게 환호를 했냐고 물어보니 ‘듬직했다’라고 했다.
8월 8일은 금요일이었다. 관공서는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할 그거로 생각했는데, 2명당 1개씩 선풍기를 돌리고 있었다. 책상 정리로 바쁜 전임자는 인수인계서와 기초연금 지침서를 건네줬다. 나는 컴퓨터도 없는 자리에서 멀뚱히 기초연금 지침서와 인수인계서를 꼼꼼히 읽었다.
하지만 읽는다고 내용을 이해할 만큼 아는 것도 없었기에 활자를 지우개로 읽은 듯 머릿속은 깨끗해졌다. 총무 직원이 전달해준 업무 분장표에는 노인, 아동, 여성 업무를 포괄해서 여성가족과 업무 담당자로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함께 식당으로 갔다. 직장인의 평생의 고민거리라는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르는 모습에서 새삼 직장인이라는 실감이 났다.
답답한 넥타이를 하고서 흘리는 땀에 셔츠는 이미 속살이 반쯤 비치는 상태가 되었다. 재킷을 벗었지만, 덥긴 매한가지였다. 계장님이 넥타이를 풀길 권하고 나서야 셔츠 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그것만으로 순간 만족할만한 시원함을 느꼈다. 그제야 주변 시선이 들어왔다. 꽉 조인 넥타이를 한 것처럼 뻣뻣한 나를 보고 불편한 직원들의 모습이 말이다. 그렇게 딱딱한 신규 직원은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직급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주민센터 직원들 얼굴도 헛갈려하고 있었다.
금요일. 점심을 먹고 시간이 흐르면 퇴근 시간이 오고 있다. 그리고는 주말이 올 것이다. 당장 할 일도 없는 나에게는 그 자체가 곤혹스러웠다. 지침을 보다가 물어보기도 하고, 급한 내용이라고 해서 짝꿍 직원이 각종 권한 신청을 도와줬다. 있는 그 자리 그대로 업무를 물려받은 상태로 각종 권한을 받아 시스템에 접속했다. 익숙해지는 것이 최우선임을 알고 있다. 머리는 아는데,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그러다 무심코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군대 어투가 튀어나왔다. 경직된 말투와 뻣뻣한 몸짓이 누가 봐도 신규 직원인 티가 팍팍 났다.
시간은 정말 안 갔다. 주민센터 시계를 보는데, 건전지가 없어 보였다. 이상하게 바늘은 3시를 넘어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자주 오신다고 별표를 쳐둔 통장님과 다양한 민원인들이 다녀갔다. 이미 등에서는 땀이 흐르다 마르기를 반복했다. 셔츠에서 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신경 쓰이지만,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나이 서른두 살에 첫 직장은 신병이 자대 배치를 받은 것과 같았다. 사회복지 도우미가 민원인에게 신청서를 받아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멋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살면서 복사기를 다룬 적도 없고, 스캔해서 파일 업로드는 해볼 일이 없었다. 간단한 워드나 엑셀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필기시험에서 가산점을 받긴 했다. 그러나 쓸모없었다. 지금까지 쓸데없이 게임만 했던 스스로가 그때처럼 한심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옆 직원도 부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호칭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떼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궁금했지만 묻지 못한 질문이 여럿 되었다. 사실 질문에 답을 들었다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소심하게 질문 내용은 별표를 치며 노트에 적어봤다. 출근 첫날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노트 메모만 적어 내려가는 내가 무능하게 느껴졌다. 직장에 출근하면 활기차게 인사를 하고, 열정적으로 업무에 매진하겠다던 아침에 다짐은 호칭 하나로 무너졌다.
일 년 같은 하루가 오후 6시 정각을 기점으로 제시간으로 돌아왔다. 계장님은 나를 바로 퇴근시키면서 월요일에 보자고 하셨다. 아무것도 한 일 없이 하루를 버텼다. 주말이 왔다는 감격과 더불어서 월요일이라는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마음에 품고 첫 퇴근을 했다.
- 덧붙이는 글.
* 2014년에 있었던 일을 2019년 책을 쓰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에서 '복서원'이라는 7기 프로그램으로 15명의 전국 선발 인원 중에서 막내로 참가한 기회에 비매품 책을 써보았습니다. 덕분에 이런 작가 지망생이라는 시도를 해본 것 같습니다.
2022년 8월 19일 우여곡절 끝에 복직을 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사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규 직원이 왔고, 내심 과거가 생각나서 그 당시 글을 저장한 것을 꺼내서 보았습니다. 쑥스럽지만, 당시의 제 병아리 모습과 사수의 모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습니다.
마흔이라는 동갑내기 부사수를 맞이하면서, 저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다듬어서 올려 봅니다. 매끄럽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