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온 편지

받고 싶지 않던 편지

by 이춘노

한 달을 끌어온 수급자 신청 서류를 정리하면서 부양의무자 서류를 보니 과거가 떠올랐다. 오래전 고시원에서 생활할 때. 고향의 주민센터에서 우편이 온 적이 있었다. 기초 생활 보장 신청을 위한 부양의무자 서류였다. IMF 이전까지는 우리 집은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생활을 했다. 친척한테 돈도 좀 빌려줘도 그렇게 생활이 어렵지 않은 보통 평범한 집이었다. 그러다 IMF가 터지고는 정말 급격하게 무너졌다.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서 전기 관련 일용직이셨던 아버지는 집에 계시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젊은 시절 다쳤던 몸이 당시에 삐거덕하더니 병원까지 가야 했다. 그래서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려고 보니 빌려줬던 친척집이 자취를 감추는 그런 상황. 나는 철없던 고등학생으로 집이 힘들다는 것을 고3이 되어서 대학을 갈 때 알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대학 생활이 내 능력과 의지가 아닌 제3의 사유로 좌절되었을 때 무력감은 생각보다 마음의 고통이 컸다.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던 대학과 전공에 1학년 때는 출석만 하고, 학교 사람들하고는 별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만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군대를 다녀와 은둔형 성격이 어느 정도 변하고, 나름의 자신감이 생겨서 공무원에 도전했다. 그렇게 온 노량진이었는데, 낙방만 하고 있었다. 틈나는 대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주민센터에 문을 두드려야 할 상황까지 온 것이었다.


우편으로 온 첫 장에서는 신청 서류 안내와 부양의무자 소득신고서, 금융등록제공신청서가 있었다. 당시에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저 암담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은 내가 마지막으로 법원직 시험을 보고서 시험장에서 돌아오던 날이었다. 그 암담한 느낌은 아마도 시험을 보고 난 후에 느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던 복잡한 상황이었다. 시험을 많이 보면 답안지 마킹을 다하고 시험지를 걷어가는 순간부터 오는 촉이란 게 생겼다.


‘아. 시험을 잘 봤구나.’


혹은 ‘시험이 어려워서 이번에는 합격이 힘들겠구나’ 하면서 스스로 총평을 했다. 그때는 이번에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받아 든 우편은 이중으로 내 뒤통수를 타격했다.


편지를 받아 들고 방에 누웠다. 적막한 고시원 방에서는 한 층에 여러 사람의 생활 소음이 다 들렸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없이 누워서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만 더 하면 합격할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접었다.

그 우편을 받은 기점으로 나는 법원직 시험을 포기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벌었다. 친구들에게 지원을 받아서 생활한 그동안의 생활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서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양의무자라는 말을 듣고 있자니 더 고향에 가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변경된 인생의 목표를 사회복지라는 것으로 길을 잡았다.

내 남은 인생을 부모님과 함께하면서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으니 좋은 생각이라면서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그동안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물론 사회복지를 너무 쉽게 본 것도 있었다. 내가 원하면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할 것이라는 무지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고도 학점 은행제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까지 합격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복지마인드가 투철해서 사회복지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상적인 변덕으로 사회복지에 발을 들였다. 그래서 지금 더 힘들다고 생각을 했다. 가난이라는 결핍과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갈망으로 이렇게 힘들다고 생각을 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신규 직원들은 지금의 직장이 싫어서 다시 공부하고 있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떠나지 못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 결핍은 돈도 아니고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도 아닌 스스로에 대한 한 없이 작은 공허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현실이 주는 심술 말이다.



- 덧붙이는 말.


이 글은 2019년에 '복서원' 7기 프로그램으로 쓴 책의 내용을 다시금 정리해서 쓴 글이다. 저장하고 올리지 않았던 것은 막연하게 올리기 싫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래도 이제는 올려도 된다는 마음의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올려본다.

사람이 밝은 글만 쓰는 것은 아니다. 아마 당시에 내가 고민한 내용에 솔직함은 묻어 난 글이기에 다시금 올려 보는 것임을 미리 양해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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