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작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2월의 마지막 날. 결혼식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 직원의 결혼식이라서 달력에 체크를 하고, 꼭 가겠노라고 말했던 여직원이었다. 아마 그간 이쁜 웨딩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혹은 공포의 웨딩 촬영의 고생을 알기에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오래전 약속도 시간을 미루고 갔으니까.
나에게 타인의 결혼식 참석에 조건이 있다. 하나는 같은 사무실에 일하는 직원의 결혼식. 아니면 신랑과 신부를 둘 다 아는 경우. 마지막으로 가족과 같은 지인의 결혼식인 경우이다. 요즘의 예식장 식장 식사 비용을 생각하면 은근히 가지 않고 돈만 이체하는 경우가 더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는 건 아닐지? 계산적인 생각이 들지만, 과거엔 꼭 참석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신규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축하의 풍속이 더 좋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선 코로나의 시대를 거치면서 속 시원하게 계좌 이체가 대중화된 요즘이 나는 편하다. 누군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난 사실 타인의 결혼식을 가거나 알던 모르던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다.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잊히는 것이 두려웠었다.
이주무관은 말이 많은 편이다. 업무를 할 때는 목소리가 크고, 민원인 혹은 이장님에게도 과도한 친절을 하기도 하며, 후배들의 업무를 보고 있다가 앞서 내서는 편이다. 솔직히 공적인 일에는 불필요한 오지랖으로 괜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일거리를 떠맡아서 해오고 있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 힘들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성향을 좀 바꿔 보라고 말한다. 이주무관은 너무 생각이 많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작가는 사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한 편이다. 이주무관은 발표도 질문도 많이 하는 얼굴 두꺼운 사람인데, 이작가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보통 혼자 있는 여러 상황을 만들고 산다. 집이나 휴일이나 여행의 순간도 확실히 연애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이런 이중생활에 체력적 소비가 많은 것도 당연한 것이라서 요즘은 업무를 하지 않는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이작가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 시작이 아침에 일찍 와서 일하기와 점심시간은 혼자 간단히 먹고, 책을 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노력했다. 팀원과의 식사나 혹은 면사무소 직원과의 사적인 식사는 되도록 싫다고 말하고 있다. 남들은 우려가 되는지 그러지 말라고 하거나, 애써 인정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설 명절의 마지막 날에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흔이 넘은 그것도 이제 마흔의 중반에 이룬 것이 뭔지 생각해 보니, 별 것 없는 둘이 나눈 대화에서 남는 것은 약간의 후회였다. 과거에 이랬다면 그래도 나았을까? 혹은 변해가는 세상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확실히 친구와의 대화는 과거에 다이어리에 새롭게 첨언을 써놓은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게 되어서 유익했다.
그 때문일까? 다시금 만보를 걷기 위해서 평소에는 걷지 않는 골목과 길을 찾아 돌았다. 큰길이 아니라 골목을 갔고, 식사를 하려고 갔던 곳에서 1인분이 안된다는 말로 발길을 돌리고도 하고, 추운 날에 무료 급식소를 찾아온 고양이와 놀기도 했다.
확실히 2025년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기만 했던 것 같다. 불필요한 기다림에 시간도 끌어보고,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다가 안 해도 될 일도 해보고, 몇 가지 유의미한 일을 했어도 결국엔 손가락을 쫙 펴놓고는 모래를 담으려고 했던 꼴사나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렇게 설 명절까지 고민을 하다가 모든 것을 툭툭 잘라내 버리니, 차츰 이주무관도 이작가처럼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애써 내가 에너지를 써가면서 연기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행동과 태도로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주변의 우려와는 다르게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일을 빨리 하고, 집중해서 개인 시간을 확보했고, 그 결과가 늘어난 독서량과 글을 올리는 현재의 모습이랄까?
혼자 있기 두려워서 갈구한 타인의 인정과 관심이 나에겐 무엇을 남겼나? 사실 없지 않았던가?
아마도 좀 더 일과 사적인 부분을 정비해야겠지만, 이것만 자리 잡힌다면 새로운 시도는 나름 성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것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선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70년 후반에서 9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지.
'나의 포지션은 무엇이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지?'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어서 상사나 선배들을 챙기는 것과 당돌한 후배 세대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포지션이 애매한 나 같은 세대는 꼰대가 되던지, 개인주의가 되는 방법 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조직을 위해서 적당히 희생하고, 차례를 기다리면 되는 낭만의 시대를 이미 사라지고 딱히 직원들과도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결혼식도 돈만 계좌로 이체해도 최대한 성의 표시한 것이 되는 지금. 굳이 이주무관도 말이 많아질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주무관이 이작가처럼 살아야 나를 위해 투자하는 삶이 되는 것이었다.
이작가는 김민철 작가의 <오늘도 모든 요일의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른 의미로 여행도 좋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과의 대화가 불편하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이 아직 불안전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굳이 해소하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실수를 연발하고, 관계는 더 악화된다.
아마도 여행이란 것 자체도 그런 마음의 치유 혹은 조정을 하는 과정일 것이다. 혼자의 시간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가고, 사색하다 보면 인생의 효율은 자연스럽게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2025년에 실패가 준 교훈이겠지만, 이작가는 말한다.
"이주무관! 이제 네 성격대로 살아. 굳이 남 눈치 볼 필요도 없잖아?"
이주무관도 크게 고개를 끄덕인 하루.
이작가와 이주무관의 모든 요일의 기록도 잠깐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