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어달항에서 도종환 시를 생각하다
"바람이 멈추었다
고요로 가야겠다
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한다"
나는 시를 즐겨 읽지 않는다.
책 페이지 넓은 공간을 덩그러니 시로 넣기에는 공간이 너무 남는다는 사소한 생각에 빽빽한 역사책을 찾아 읽은 마흔 아저씨였다.
그런 내가 어쩌다 시집을 들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온몸으로 느껴서 터지듯 출발한 동해. 미친 듯 내 차를 혹사시켜서 몇 백 킬로를 달렸다.
운이 좋았다.
떠나는 날이 날씨가 무척 좋았으니까. 전날까지도 흐리고 비가 왔는데, 묵호항에 도착할 무렵에 날씨는 너무 화창했다.
내가 도착한 곳은 동해 어달항이었다. 바로 옆이 묵호랑이라서 그 이름이 더 유명할까? 처음 온 곳은 아니지만, 자세하게 둘러본 곳도 아니었다. 그래도 내 마지막 종착지로 좋을 것 같았다.
뭐랄까? 동해에 왔지만, 굳이 사람이 많은 강릉에는 가고 않고, 순수하게 동해를 느끼고 싶은 마음?
봄이 오는 3월부터 특히나 꽃이 피는 4월에는 사람과의 대화가 미치도록 두려웠다. 별 것 아닌 일에 당황하면서 등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보여줄 길은 없으니, 최대한 나를 드러내지 않으며 참고 버텼다.
그리고 훌쩍 떠난 동해의 길은 오래된 나의 차와 나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좁은 방구석에서 나를 감싸는 이불에 몸을 맡겼을 테지만, 과거의 미련과 <고요로 가야겠다>라는 시집의 문구가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해가 지고 있는 무렵의 어달항의 바다는 그래도 푸르렀다.
"고요는 침착한 두 눈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보게 하고
육신이야말로 얼마나 가엾은 것인지 알게 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나의 그늘진 곳. 해가지는 동해를 한없이 지켜봤다. 날이 좋았던 낮의 감상과 다른 차갑고, 묵직한 쌀쌀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떨어지는 해를 보고픈 마음에 항구 끝자락에서 자리를 지켰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허약하며 자주
바닥을 드러나는 사람인지
고요는 이미 다 안다"
그렇게 다 안다는 듯한 바다의 바람이 나에게 아직은 해야 할 일이 있다가 알려줬다. 내일 해가 뜨고, 다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아직 용서할 때라도 말이다.
나도,
너도,
우리도.
바람이 살짝 멈춘 시점에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고요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힘들 때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고는 두 손 모아서 신께 기도했다.
'용서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고요>를 동해 어느 바다에서 나에게 들려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