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짝꿍

가족보다 더 오래 지내는 사람은?

by 이춘노

사회복지 업무를 혼자 하게 된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갈 무렵, 10월 인사 소식이 들려왔다. 보통 공무원은 상반기와 하반기를 기준으로 정기 인사를 하고, 그사이에 승진과 휴직·전보를 위해 소규모 부정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10월 인사는 부정기 인사치고는 신규 직원까지 들어와 제법 규모가 크다고 했다. 우리 주민센터는 빈자리는 채워지지만, 일반행정직 신규 직원을 배치한다고 소문이 들려왔다.

대부분 주민센터에는 복지 업무를 사회복지직이 하는 것으로 알지만, 사업의 확장성에 비해서 아직 조직 체계는 과거 90년대로 머물러 있는 지자체가 대부분이다. 작은 소도시의 주민센터에는 아직도 1명이 사회복지 업무를 보거나, 2명 이상이 있더라도 사회복지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겸하는 곳이 많았다. 복지팀이 꾸려져서 이곳저곳을 출장을 나가는 보건복지부의 희망찬 계획과는 동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부족한 인원을 일반행정직 직원이 채우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동장님은 전문성과 책임에 대해서는 당시 관리직 공무원 중에서는 명확한 소신이 있었다. 부득이한 결원으로 인한 근무자면 몰라도, 복지는 전문적이므로 성과와 책임에 대한 것은 복지직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 보기 드문 분이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있는 자리에서 크게 호통도 치고, 낼 수 있는 성과를 놓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하시는 전형적인 일 중독 동장님이었다. 그렇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는 엄격함으로 부당한 청탁이나 민원에서는 과감하게 직원들을 지켜주셨고, 성격이 호랑이라는 무서운 소문과는 다르게 다정한 선배였다.

지금까지 내 설명에 근엄한 남성 동장님을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동장님은 패션 감각이 뛰어난 여성 동장님이었다. 과거의 엄격한 업무 처리 때문에 나에게는 근무하기 편하냐는 주변 동료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동장님은 막둥이 걱정에 인사계와 주민복지과에 매주 전화를 하셨다. 저러다 우리 막내 큰일 나겠다면서 직원 하나 빨리 보내 주라고 말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소문은 그리 낙관적이지는 못했다.

인사계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서 참고는 하지만, 인사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인원과 균형에 민감했다. 그러한 균형적인 관점에서 내 빈자리는 나보다 선배가 오는 것이 아니라 행정직 신규 직원이 배치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것은 아무리 추진력이 강한 동장님이라도 해결하기 힘든 사항이었다.

인사 발표가 나길 기도하면서 그날도 야근 준비를 하는데, 타 주민센터와 면사무소에서 전화가 온다. 그건 바로 축하 전화였다. 내가 인사가 나서 승진을 한 것도 아닌데, 정말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았었나 보다, 입사하고 그렇게 격한 축하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신규 행정직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사회복지직 3년 위 선배가 새로운 짝꿍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날은 내가 승진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 좋게 야근을 했다.

새로 오신 분은 듣기로 아이가 둘인 엄마로 성격이 좀 세다는 소문을 들었다. 막상 함께 일한다는 생각에 걱정도 되고, 든든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인사 다음 날부터 두 달 가까이 쓰지 않은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다닥 떠난 전임자 때문에 책상 정리를 못 하고 일만 했는데, 그 사이 책상에 먼지가 많이 쌓였다. 모니터도 닦고, 지침서에 쌓인 먼지도 털고, 책상 서랍도 비웠다.


‘얼마나 기다리던 짝꿍인가?’


만나면 뭐라 말할지, 혼자 생각을 하면서 인사 온 새로운 짝꿍을 본다. 무표정한 얼굴은 가뜩이나 마른 체형이라서 분위기가 확실히 세 보였다. 순간 주눅이 들었고, 급하게 처리할 것만 몇 개 적어서 인수인계하려고 서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저절로 주사님이라는 호칭이 나오는데, 환영한다는 의미로 너무 오시길 고대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쁘다는 말도 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아마도 나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는지 내 고생을 알아주는 건지 애쓴 거 같다며 호응도 해줬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컴퓨터가 작동을 안 했다. 조금 전 새로운 주사님이 오셔서 너무 기쁘다고 청소까지 했는데, 막상 컴퓨터는 미처 확인을 못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행정 컴퓨터는 한동안 사용을 안 하면 작동이 제한된다고 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때 처음으로 새로운 짝꿍의 실소를 보았다. 어이없었겠지만, 동생 같은 직원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처음으로 웃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짝꿍에게는 주사님이라는 호칭이 아니라 ‘누나’라고 부르고, 최대한 친근해지려고 노력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이치가 있다. 나와 새로운 짝꿍은 성격이 정반대였다. 나는 업무노트에 꼬박꼬박 적어서 일을 처리하는 꼼꼼한 성격이고, 반대로 짝꿍은 시원시원하고 추진력도 있었다. 분명 업무 처리를 하면서 충돌하기도 했다. 그것만 본다면 안 맞을 것 같지만, 1년 가까이 참으로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이 된다. 이유는 서로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정확히 인정하고, 실수한 것에 대해서 바로바로 사과하고 정정하다 보니 안 맞을 것 같은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둘도 없는 짝꿍이 되었다.

사회복지는 어느 직렬보다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하다. 민원인이 상담하거나 항의를 한다면 수급자 문제라고 내 문제가 아니거나 아동 문제라고 해서 내 일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한 명이 곤란해지면, 한 명은 시청 담당자나 지침을 찾거나 공문을 찾아서 바로 도움을 주는 뱀의 머리와 꼬리와 같은 입장이다. 그런 관계를 처음으로 느꼈기에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짝꿍과의 이야기가 사회복지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것은 아님을 알기에 나의 짝꿍에게 항상 감사했다. 오늘은 주변에 있는 짝꿍에게 고맙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아마 해보면 달라질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맛집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