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출혈(鼻出血)

코피 나게 일하고 있었다

by 이춘노

사람들은 무언가 피를 봐야 끝났다는 심리가 있다. 자극적인 성과 표현의 대부분은 피와 연관을 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한 번은 흘렸을 피는 코피가 있다. 나는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코피가 터진 친구를 보면 부러웠다. 열심히 공부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똑같이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데 왜 저 친구는 코피가 나는지. 나도 공부하다가 코피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훈장 같은 것으로 코에서 빨간 피가 나오고, 그것이 하얀 휴지에 묻어 나왔을 때는 이유 불문하고 안쓰럽고 동정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공부하면서 코피가 나오지 않았다. 코를 손으로 파다가 너무 깊게 판 손가락에 피가 나와서 내심 모른 척하긴 해봤어도 공부 때문에는 아무 일 없었다.

군 복무 중에는 무더운 여름에 입소 후, 적응도 안 된 상황에서 무턱대고 헌혈을 하고 나서 거의 매일 코피가 나긴 했다. 그건 아마도 체력적인 것보단 심리적인 문제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나는 새벽 5시에 기상해서 학원에 가서 자리를 맡았다. 저녁 11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가 잠을 청하면서도 배가 고프거나, 잘 못 먹은 주먹밥에 위장이 고장 나서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10kg이 빠지는 급격한 변화 중에도 코피는 안 났다. 또 공무원 시험을 접고, 매일 야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할 때도 안 난 코피가 짝꿍이 도청으로 가고 야근을 하면서 나기 시작했다. 영화같이 야근 중에 콧물이 나는 거 같아 손을 쓸어보니 피가 묻어 나와 급하게 휴지를 찾았다. 신기하게 그냥 일하다가 코피가 났다.


어느 날은 민원인과 상담을 하다가 내 코를 보면서 피가 난다고 했다. 기초연금 상담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는데, 순간 코피 때문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피를 씻어내고 휴지가 최대한 안 보이게 코를 막고 나왔다. 사실 그때부터는 민원인이 내 코만 바라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 상담했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 나는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 코피가 흘러서 콧물만 나와도 코피인가 하고 덜컥 겁이 났다. 바쁠 때는 아무렇게 뭉친 휴지로 급하게 코를 막았다. 화장실도 안 가고 물티슈로 손만 닦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거의 하루에 한 번은 코피가 나오자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해서 의식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 이렇게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하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초반에는 있었지만, 너무 자주 터지는 코피에 슬슬 부끄러워서 자연스럽게 코를 막고는 일을 했다.

혼자 일하면서 몰려드는 민원인과 쌓여 있는 신청 서류, 제출 기한이 임박한 공문 회신이 많아지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하루라도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어느 날은 아무에게나 고함이라도 치고 싶을 때가 생겼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코피가 터졌다. 의학적으로 코피가 왜 터지는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아도 정확한 원인은 알 길이 없었다. 혈압이 문제라서 그렇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제일 많은데, 늘어나는 몸무게와 커피가 문제일지. 군대 때처럼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서 코피가 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내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가는 모르겠다.


당시 나의 코피는 너무나 힘든 상황에 대한 몸의 파업 신호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혼자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앞으로 그것을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상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코피는 이후로 끊이지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직전에 코피가 터져서 조용히 코를 틀어막고 야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신규자 교육을 마치고 나와 저녁을 먹고 싶다며 주민센터로 온 동기 큰 형님이 내 모습을 보며 걱정을 했다.

나의 정신적 지주인 동기 중에서 나이가 제일 연장자인 형님은 어려울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순간에는 몸이 나에게 주는 신호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말했다. 코피는 몸이 힘들다는 경고니까 무시하지 말고, 일에 대해서도 주변에 표현하라고 말이다.

사회복지 업무를 보면서 짝꿍의 빈자리를 내가 다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무작정 혼자 품고 있었다. 그게 무리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코피마저 터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코피가 나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부끄러울 것도 아닌데, 숨길 것도 없어서 큼지막하게 코를 막아본다. 과로한 나의 몸을 위해 자그마한 스스로 광고를 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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