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이유는 남이 떠주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찾아 얻는 질문이다
나는 입사 만 2년이 지나고 나서야 ‘신규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신규자라 말하기에 모호한 시기의 교육이었다. 좀 빠른 지역에서는 승진하고도 남았을 시기인데, 신규자 교육하러 가라고 하니 그것도 참 어색했다. 그래도 새로운 짝꿍이 이때 아니면 못 간다며 든든한 누나가 있을 때 다녀오란다. 그런 강한 권유에 못 이기는 척 교육 신청을 했다.
임용 시기와 같은 8월에 교육을 받게 되었다. 대부분 공무원이 교육하면 먹고 놀고를 연상한다. 전해 들은 바로는 신규자 교육은 쉬다가 오는 천국이었다. 아니면 계장급 선배들 말은 군복 같은 복장에 아침 구보까지 했다는 말도 있었고, 저녁에 담을 넘어 교육생끼리 술을 마셨다는 무용담도 빠질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은 그때와 좀 다른 것 같았다. 총 3주의 교육 기간 중 합숙 기간은 1주이고, 2주 동안 출퇴근을 하면서 빡빡한 일정에 밤 9시까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조별 회의를 하면서 과제 발표 준비도 해야 했다.(당시는 2016년의 이야기지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물론 최종 교육 시험 평가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교육이 한창이던 어느 날, 점심시간 이후에 공직에 계셨던 퇴직 선배님이 강사로 나와 인사를 했다. 교육생 대표가 도청에서 일하셨다는 약력 소개를 하고, 마이크를 넘겼다. 강의 주제는 본인 삶에서 본 공직자의 마음가짐이라고 말하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집중이 되지 않는 교육을 받게 되면 휴대전화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어색하고 불안하면 다른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교육은 당사자에게 상당한 부담을 담보했다. 단지 사무실 공간에 없다는 것뿐, 업무의 연속성은 끊어지지 않았다. 유선 전화라면 전선이라도 뽑아 두겠지만, 지금은 전파로 연결된 세상. 단순하게 업무 대행자에게 맡기고 훌쩍 떠나서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는 행운아 같은 직원은 의외로 적었다. 교육 중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도 사무실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직장인의 교육은 불편한 마음을 갖고 받는 계륵(鷄肋) 같았다.
수 분 후, 강사의 말은 자장가처럼 들렸다. 이미 졸고 있는 교육생들이 속출했다. 나는 이럴 때 잠을 쫓기 위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 던졌다. 그날도 뜬금없이 단어를 검색했다. 신규자(新規者)‘조직이나 단체 따위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다. 교육은 사전적 의미로‘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이다. 신규자는 이미 내 존재 자체가 단어에는 맞지 않았다. 2년 전에 들어온 내가 신규자라고 정의하기도 모호했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지식과 기술은 알겠는데, 무슨 인격을 기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신규자 교육을 오기 전에도 유치원부터 임용을 위한 시험공부까지 교육이라면 정말 지겹도록 받았다. 그런데 인격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인격보다는 성적과 합격을 보고 공부했다. 교육의 철저한 성과로 대학교를 진학하고, 서른 살이 넘도록 취업에 굴레에서 돌아온 곳이 공무원이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신규자로 어딜 가든 교육을 받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엄마 손을 잡고 담임 선생님께 인계되는 순간에도 난 신규자 교육을 받았다. 대학교 때는 신입생 환영회라는 명목으로 소주와 막걸리는 마시면서 선배들한테 교육을 받았다. 다만 직장을 갖고 난 후에야 교육의 단어를 찾아본 것을 보면, 아직 나는 신규자였다.
이제는 제대하신 선배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이어지는 교육 중에 인격에 대해 고찰을 해본다. 교육 중에 강사님이 강한 어조로 본인의 퇴직 후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들렸다. 순간 멍했다. 아직은 공직생활 시작인 교육생들은 또다시 망상에 빠졌을 것이다. 당장 교육이 끝나고 모여서 술 한 잔 마시기로 한 팀들은 단체 카톡방 대화 중이고, 사무실 직원과 업무 진행을 하는 가운데, 30년 후에 있을 퇴직은 신규자가 듣기에는 너무 먼 미래였다.
그러나 나는 생각해보긴 했다. 대부분 말하기를 법원직은 퇴직 후에 법무사 자격증으로 노후를 생각한 것이고, 사회복지직은 대부분 각종 복지기관을 염두에 둔다고 말이다. 공무원이 노후를 생각한다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2014년부터 공무원 연금은 힘을 잃었고, 우리가 민원인으로 만나는 만 65세 노인은 본인들을 노인으로 부르는 걸 무척 싫어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는 건 나도 그땐 노동자로 당연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 행정학 전공 수업 중에 교수님은 지방에 지자체는 인구 감소로 흡수 통폐합되어서 결국엔 당시의 은행처럼 바뀐다고 예견했다. 사람이 줄어들고, 기계가 대체되는 점포. 그러한 지점이 통폐합되는 것은 공공의 영역이라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던 수업 내용이 10년이 지나고 보니 맞는 것 같다. ‘나의 퇴직 후는 어떠한 모습일까?’ 생각도 해봤다.
다시금 강사는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끝맺음 분위기에 교육생 모두가 그때만큼은 집중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며, 공직생활도 주특기를 살리라는 말이었다. 앞으로 그게 없다면 여러분은 당신의 나이에 무엇을 할지 모른다 했다. 끝났다는 기쁨에 박수가 쏟아졌다. 쉬는 시간 쏟아지는 눈꺼풀에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내 주특기와 인격에 관한 생각을 해봤다.
차도 굴리고, 월급통장에 돈이 들어온다고, 신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어떠한 공무원이지. 고도로 발전된 세상에서 단순한 경험으로 넘어갈 만큼 단순한 업무는 이제는 없다. 그리고 아직은 지난달에 들어온 신규와 2년을 일한 나는 대체 가능한 주특기 없는 공무원일 뿐이었다. 결국, 죽을 때까지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인격에 대한 고찰은 차차 교육을 받으며 깨닫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교육을 마무리했다. 수업 이후에도 많은 사람과 제법 긴 시간 동안의 교육을 받으면서 주특기를 갖자고 계속 생각했다. 메모도 했는데, 역시나 사무실에 복귀하고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