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센트를 샀어요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없었다. 한참 경기가 좋은 90년대 초반, 시골 사람들도 차를 구매해서 타고 다닐 때, 나는 아버지 오토바이 뒷좌석에 탔던 게 전부였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자동차 면허증이 없어 그랬지만, 이후에 경기가 나빠지고 나서는 차를 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난 아버지가 운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없었다. 택시 정도 타야 기사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는 정도였다.
아버지께서는 운전면허증에 한(恨)이 있으신지, 내가 대학에 입학한 그해. 여름 방학에 바로 나를 운전면허학원에 등록시켰다. 그렇게 취득한 면허증 하나에 가족끼리 즐거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20살에 딴 면허증은 이후 ‘장롱면허’로 내 지갑에 잠들었다. 그래도 항상 자격증 취득 난에는 소심하게 운전면허 보통 1종을 적었지만, 내심 운전 한번 해본 적 없는 나한테 운전이라도 시키면 어쩌나 걱정했다.
운전면허증을 한 번 갱신하고도 한참 후에야 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주민센터에서 일하게 됐다. 주민센터에서는 일명 동차(1t 트럭)를 운전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것도 성별이 남자라면 필수로 운전해야 했지만, 걱정이 많은 소심한 성격이라서 핸들을 잡지 못하고 다른 직원에게 많이 부탁했다. 짝꿍이 하얀색 아반떼를 운전했기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게 업무적으로 불편한 것은 없었다. 다만 업무적 불편함을 떠나서 심리적 압박은 컸다. 그래서 임용 전에 여행을 다닐 것이 아니라 운전 연수라도 제대로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했다. 그래서 혹시나 주민센터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성별을 떠나서 운전은 배우길 추천했다. 하다못해 도로 연수라도 다시 받는다면 아마 직장 생활은 한결 부드러웠을 것이었다.
갑자기 운전하려고 해도 연수 몇 시간 받는다고, 1t 트럭을 몰고 다닐 순 없었다. 보통 자기 차로 이곳저곳 많이 운전해봐야 익숙해진다. 그렇지만 나는 차가 없었다. 임용 후 1년을 집에서 사무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한여름이나 겨울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인내가 필요하지만, 당장 차를 살 돈도 없었고, 반강제로 타고 다녔다. 그러다 도청으로 가는 짝꿍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짝꿍까지 가면 운전만이 아니라 내 차도 필요하다는 것이기에 나는 차를 알아봤다.
하지만 차를 사려니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코미디 콩트에서 모닝을 사러 갔던 직장인이 딜러의 꼬드김에 외제 차까지 사는 과정을 보고 웃었는데, 사람 심리는 다 비슷하다. 처음에는 차를 사자는 결심을 했는데, 문제는 차종이었다. 중고차를 사려고 여러 사이트를 알아봤으나 주변에는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이 없어 중고차 대신 신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당시에 나는 능력에 맞게 모닝을 사야 했다. 이것도 차량 옵션을 달고, 이것저것 계산하니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반떼보다는 소형차로 분류되는 엑센트를 사기로 마음먹고, 전주와 고향을 오가며 발품을 팔아 견적을 받았다. 사실 소형차는 다른 차에 비해서 딜러로선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을 이야기하면 나중을 위한 투자라며 역시나 아반떼를 추천했다.
나도 자꾸 아반떼에 눈이 갔다. 몇백만 원만 올리면 살 수 있는데, 내가 너무 소심하게 차를 사는 건 아닌지. 결혼 이후도 생각해야 하는 장기적인 이유까지 하면 차를 사는 것은 참 자기 절제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엑센트로 최종 선택을 했다. 남은 건 36개월 할부금이었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걱정에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 영업사원의 말이 있었다.
“차종은 절대로 후진하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이 첫차를 구매하면 딜러가 하는 조언이라 했다. 차를 바꾸면서 더 좋은 것을 타게 되는 심리가 당연하다면, 일단은 그 시작은 본인 분수에 맞게 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마음에 와 닿는다. 사실 그 말이 아니었으면, 엑센트를 타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차를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본인 부담금과 각종 세금, 보험료를 1년간 번 돈으로 냈다. 그리고 1,200만 원의 돈을 36개월 할부로 남겨뒀다. 아마도 순전히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은 무리였을지 모르겠지만, 당장 재산 목록 1호이며, 조금은 당당한 자립의 상징으로 봐도 좋았다. 차가 처음 나온 그 날은 나의 첫차자, 우리 집 첫 번째 차였기에 가족 모두 기분 좋게 외식을 하였다. 그리고 차를 선택한 마음처럼 나의 직장에 대한 선택이 후진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 2015년에 구매한 엑센트가 지금은 6만km를 탔고, 저 멀리 강릉까지도 다녀온 아직은 튼튼한 녀석이네요. 조만간 이 녀석과 함께 여행한 이야기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