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가벼운 병이 있을까?
삶은 질병과 함께한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라도 병원을 다녀왔다. 질병이 크든 작든 아픈 건 보통 기억하기 마련인데, 병원의 기억은 대충 생략되어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감기’ 아닐까? 의학 사전을 보면 ‘급성비인두염’이라고 부른다.
증상은 기침을 콜록거리고, 콧물이 주욱 흐르는 정도를 넘어서 따끔거리는 목구멍에 열까지 나면 온몸이 구석구석 쑤시고 아프다. 일반적으로 감기로 병원을 가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몸살감기로 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넘어서 고통스러울 때만 병원을 찾는다. 딱히 아픈 데가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몰라도 전라도 방언에 ‘거시기’처럼 감기라고 말하면 의사도 약사도 친구도 나 자신도 너무 쉽게 알아듣는다. 아프긴 한데, 딱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걱정이 되는 하찮은 병. 잘 먹고 잘 자고 푹 쉬면 좋아진다는데, 이틀 정도 땀을 흘리고 누워있는 것조차 과분한 호사다. 그런데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시했던 감기라는 것이 반란을 일으켰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서 감기 증상은 암보다도 더 위협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젠 공공장소에서 혹은 가까운 지인과의 대화 중에 기침하면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단순한 감기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불신 가득한 세상에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입을 가린다.
작년만 해도 환절기에는 기침 환자가 그리도 많았다. 면역력이 약한 나는 봄가을철에는 꼭 진통제를 가방에 넣고 다녔고, 병원에 갈 정도의 감기 증상으로 하루 정도는 이불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 할 때가 1년 중에 2~3번은 있었다. 그리고 괜히 유행기라는 표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 가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기침 환자가 가득했다. 이미 감기 증상으로 바이러스를 공유하는 타인들과 단체로 모임 갖는 기분이었다.
감기라는 질병은 너무나 대중적이고,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하는 질병이라지만 실체가 딱히 없다. 그냥 코가 아프면 코감기, 목이 아프면 목감기,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기다린다. 이 증상 가지고는 합병증을 걱정하지, 딱히 증상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감기에 걸려서 마스크를 끼는 경우도 남들을 위한 걱정이라기보단 보기 흉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일하다가 감기로 인해서 하루 연가를 내면 상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는데, 지금은 감기 증상이 다른 의미로 대중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아프면 쉬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대부분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생활화하다 보니 우리가 말하는 감기는 실제로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한다. 오히려 감기라도 걸리면 주변 눈치를 보고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 내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이라면, 과거에 내가 만난 사람과 지나가다 들렸던 모든 곳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감기라고 항변을 해도 의미 없다.
최근 아버지 간호를 하다가 퇴원 후에 긴장이 풀렸는지. 간단한 일정을 조금 무리했다고 감기 기운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들의 안부를 묻고, 내 몸 상태를 체크했다. 그러다가 단순히 나만 아프고 이틀 후에 몸 상태가 좋아지자. 너무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기의 역습.
사실은 너무 위험했던 증상이었는데, 너무 쉽게 걸리고, 너무 쉽게 나아버리는 질병이라서 감기가 삶의 일상이 돼버린 것이 아닐까? 막연하게 과거에 의학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감기와 코로나19를 구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상처럼 걸리던 감기로 사람이 아프고 죽어간다면 하늘에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반성을 하며, 구해달라며 믿지 않던 신까지 끌어다 모실 것이다. 사람은 죽음에 직면하는 구체적으로 몸에 신호가 있거나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인생을 돌아본다.
삶이 질병과 같다는 내 말은 전과 다른 시기가 올 때 체감했다. 오히려 과거가 낭만적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다. 단순히 열이 좀 났더니 조금 기침을 한다고 공공기관이나 대중교통, 맛집, 가까운 지인과 모임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서운 바이러스 세상이다. 그리고 잠깐의 몸살로 누워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간호를 받는 낭만은 없어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아무래도 너무 많이 먹어버린 감기약의 항생제가 문제였을까? 너무 안일하게 바이러스를 생각했던 사람들의 욕심 탓이었을지. 눈치 보며 하루 연가 내고 쉬는 감기를 달고 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그리운데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게 더 슬픈 것 같다. 과연 우리의 감기라는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코로나19 이전에 삶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과거의 낭만적 감기를 그리워하듯 아픈 내 삶을 돌이켜 본다. 하지만 나도 안다. 그렇게 어딘가로 가버린 내 젊은 시절 아픈 추억들은 삭제된 내 기억과 쓰레기장 어딘가에 묻혀 있을 처방전 약봉지뿐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