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의 결혼식

내 주변에 짝꿍이 있다

by 이춘노

막둥이의 결혼식이 있다. 휴직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편해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이 많은 곳은 잘 안 가는 편인데, 내가 제일 아끼는 동기 찍찍이가 결혼한다니 정장을 챙겼다.

5년 전, 사회복지직에 합격하고, 인사카드를 작성하기 위해서 총무과를 갔다. 회의용 원형 테이블에는 나와 같이 합격한 찍찍이도 있었는데, 녀석과는 그때 처음 만났다. 작고 귀여운 외모가 실제 본인 나이보다 더 어리게 보여서 지나가던 직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25살 귀여운 막둥이와는 7살 정도 차이가 났지만, 여린 외모와는 다르게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형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모두가 총각이었던 그때는 설마 하니 7살 어린 동생보다는 먼저 결혼을 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 나를 제치고 결혼했다.

결혼 상대는 우리보다 1년 후배였는데, 첫눈에 관심이 있었던 찍찍이의 노력으로 긴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됐다. 이렇게 7명의 동기 중에서 4번째 결혼으로 유부남과 총각의 비율을 유부남 쪽으로 반수가 넘어갔다. 그래도 단체 카톡방에서 대화도 꾸준히 하는 그것은 임용했던 2014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대화의 내용이 결혼 생활과 육아 이야기가 나오면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리감은 있지만, 남자들 특유의 수다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식은 6월 1일이었다. 큰 결혼식장을 예약해서 혹시나 하객들이 적게 올까 봐 걱정하던 찍찍이가 환하게 웃을 만큼 축하를 해주러 오신 분들이 많았다. 내가 들떠서 너무 일찍 예식장을 갔는데, 본의 아니게 하객과 인사를 많이 했다. 임용 초기에 결혼했던 동기 형들을 생각하면 5년 차 공무원이 되면서 알게 된 인맥이 점차 넓어진 것을 느꼈다. 신랑 신부의 가족과 친인척들은 모르겠지만, 대부분이 직장 동료인 걸 보면 5년이란 시간 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식장 입구에 서서 로봇처럼 입장하는 찍찍이를 보면서 웃다가 지나가는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인사를 계속했다. 그중에는 모셨던 직장 상사도 계셨다. 대부분은 인사말은 결혼하느냐는 질문인데, 그럴 땐 웃으면서 말했다.


“내년에 해야죠.”


그러면 그냥 웃으며 그때 부르라고 하셨다. 사실 입사 때부터 했던 말인데, 나름 효과가 좋았다. 사람들은 내년이라 하면 시간이 좀 여유가 있지만, 그리 늦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 하나 보다. 더는 묻지 않았다. 이건 꼭 결혼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하지 못할 때는 곤란한 질문에 내년엔 가능하겠다는 말로 슬쩍 희망 사항을 답으로 던졌다.

결국, 내년이라고 미루던 대답이 벌써 5년째가 되었다. 어쩜 정말 내년이면 되었던 시기도 있었고, 내년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시기에도 그리 답을 했다. 특히나 나의 생활과 삶이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던 시기에는 그냥 흘리는 말로 답을 했다.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면서 남은 직원들과 이야기를 했다. 딱히 결혼 이야기가 아니면 지금 일하고 있는 면 이야기가 단골 주제였다.


“잘 지내지?”


대부분 내가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 텐데, 질문이 한결같다. 그렇게 그 질문에는 참 많은 뜻을 내포해서 당황스럽지만, 애써 웃었다. 밥을 먹고, 찍찍이가 전주에서 대여한 한복 반납을 부탁해서 해서 기다렸다. 식이 끝나고 한참을 기다려서 한복을 받아다가 전주로 운전을 하면서 생각한다….


‘나는 잘 지내고 있겠지?’

‘내년에는 뭔가 달라지겠지?’


자신에게 질문을 한창 하던 중에 찍찍이 전화가 왔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면서 한복집 골목이 좁다면서 운전 걱정을 했다. 그 전화에 한 번씩 웃었다.

내가 5년을 일하면서 앞으로 직장생활이 또 내 인생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시기 동기들이 버팀목이 되어준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찍찍이처럼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난관을 극복할 것 같다는 기대를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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